[경일춘추]이해하였다는 착각
[경일춘추]이해하였다는 착각
  • 경남일보
  • 승인 2023.10.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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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김종윤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고등학교 시절 물리 과목을 반쯤 포기하며 살았다. 빛이 어떻게 퍼져나가고 꺾이느냐에 대한 원리(빛의 회절)에 대해 선생님 설명을 떠올리거나 교과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원리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세상이 좋아져서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예전에는 알기 어려운 다양한 강의를 보게 된다. 얼마 전 우연찮게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소개한 영상을 통해 예전에 그렇게 어려워했던 물리 관련 내용을 접하게 됐다. 그중에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강의들도 있었다. 물론 내가 본 영상은 대중 교양 수준의 강의들이었지만.

관련 영상을 몇 차례 보니, 예전에 물리학을 포기했던 내가 이제는 과학을 이해하는 교양인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몇 번의 영상 시청으로 그 분야의 지식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생각은, 단언컨대 착각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강의를 몇 차례 들으니 그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 방식들에 익숙해진 것일 뿐이었다.

독서 교육 분야에는 스키마(schema)이론이 있다. 스키마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총체를 의미하는 말로, 다른 말로는 배경 지식이라고도 한다. 이 지식은 구조화되고 정리돼 우리의 뇌 속에 저장돼 있다. 독자는 자신의 배경 지식을 활용해 세상의 여러 정보와 개념을 읽고 이해하고자 애쓴다. 읽는 과정에서 독자가 새로 알게 된 정보가 기존의 스키마와 큰 차이가 없으면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새로 접하는 정보를 자신의 스키마에 맞게 수정·변형해 이해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정보가 포함되도록 자신의 스키마를 바꿔야한다. 이때 새로운 정보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적지 않은 인지적 노력이 들어가며, 이 과정에서 ‘이해’라는 과정이 수반된다. 반면 스미카와 결합되지 않은 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정보들은 금세 휘발돼 잊어버리기 쉽다.

앞서 과학 영상 강의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이유는, 과학에서 들은 개념을 내 말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 영상 강의를 나의 지식과 연결해 이해하고자 한 과정이나 노력 없이, 영상의 설명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이해했다고 넘겨 버린 셈이다. 혹시 나와 같이 여러 영상을 듣고 보면서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이를 확인하는 일은 강연자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로 정리해서 스스로에게 설명해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하면서도 계속 이해하고 배워나간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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