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김종길 향토사학자가 본 위암 장지연
[창간특집]김종길 향토사학자가 본 위암 장지연
  • 백지영
  • 승인 2023.10.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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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에 대한 사회적 논의·재평가 필요"
김종길 향토사학자

 

“뛰어난 언론인이자 세계를 향한 열린 시각으로 근대화를 주창했던 선각자, 위암 장지연의 업적에 대한 폭넓은 공론화와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지난 10일 경북 구미 여헌기념관에서 만난 김종길(70) 구미근현대사 연구모임 대표가 여러 차례 강조한 말이다.

김종길 대표는 구미근현대사 연구모임 대표를 비롯해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여헌학당 학장, 구미독립운동사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는 향토 사학자로 최근 10년 이상 위암 장지연을 연구해 왔다.

이날 김 대표를 만난 여헌기념관은 위암 장지연의 12대조인 조선 중기 유학자 여헌 장현광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김 대표가 학장을 맡고 있는 여헌학당이 운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이곳을 주축으로 지역사회 곳곳에서 여헌과 위암, 독립운동을 비롯한 지역 근대사에 대한 강의를 해오고 있다.

국문학 전공 후 구미 지역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지방 분권을 연구해 온 김 대표가 위암 장지연을 깊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지방 분권 연구 과정에서 지역 근대사를 조명한 것만 20년. 이 과정에서 구미 지역 근대화 수용을 이끈 각성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위암을 들여다보게 됐다. 2000년대를 전후해 불거진 위암의 친일 부역 논쟁도 촉매제가 됐다.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가라고 굳게 믿었고, 저 역시 사랑해 온 뛰어난 선각자가 하루아침에 부일 협력자 꼬리표를 달게 된 모습을 보며 위암이 어떤 변천의 역사를 갖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깊이 들여다보기 위암의 저서인 ‘위암문고’를 5번씩 읽고, 그가 주필로 있던 시절 경남일보 기사도 수백 편씩 찾아봤죠.”

1864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위암은 1877년 경북 구미로 터를 옮겨 스승과 벗을 사귀는 등 30여 년을 보내며 지역 근대화를 이끌었다. 이후 ‘황성신문’을 창간해 주필·사장을 지내며 ‘시일야방성대곡’을 싣고, 러시아로 건너가 신민회 인사 등이 주도한 한글신문 ‘해조신문’을 창간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경남을 거점으로 활동하게 된다.

“위암은 1909년 9월 경남 인사들의 초청을 받아 진주로 갑니다. 촉석루에서 열린 당대 근대 지식인들의 전국적인 모임, 대한협회 연설회 참석을 위해서죠. 이러한 만남 등을 계기로 위암을 초대 주필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탄생했습니다.”

김 대표는 “당대 지식인 중 가장 폭넓게 근대화 촉구 목소리를 낸 이가 위암”이라며 “자신이 주필을 맡았던 ‘황성신문’이나 ‘경남일보’에도 ‘외보’란을 통해 관련 소식을 많이 실었다”고 설명했다.

지역 신문이지만 1911년 발생한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 등 중국이나 일본의 굵직한 동향을 지면으로 전했다. 여성권과 사회주의 동향, 자유주의, 투표권 등도 다루며 외국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직시하도록 했다.

김 대표는 “신문을 통해 경남 사람들은 대한제국이, 조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을 것”이라며 “동아시아에서 세계 흐름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기조를 정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측면에서 위암은 대단한 선각자”라고 했다.

세계를 향한 위암의 넓은 시야는 당시 경남일보가 직접 열었던 야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당시 경남일보 기자들이 직접 야학교 선생을 맡았는데, 여기서 그 시절 기자들이 지닌 의식을 엿볼 수 있어요. 위암도 주필에서 물러난 후 한문·지리·역사를 가르쳤는데, 만주를 두고 고구려 시절 한족과 중원의 패권을 두고 다퉜던 우리의 땅이었다는 역사를 강조했습니다.”

여성 인권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던 시절, 위암은 경남지역 지식인을 중심으로 여성들도 참여하는 ‘난정계’라는 회를 만들었다. 1913년 진주 촉석루에서 개최된 난정계 기념식에는 국내 대표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촉석루 건립 이래 최대의 문화 행사’로 평가받았다.

위암이 중요시했던 것은 서울만 깨우치면 안 되고, 지방도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전국과 지방을 분주히 다니며 근대식 학교, 상공업, 농업 개량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 대표는 “위암은 방대한 글 중 해석이 모호한 시·수필 몇 편을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부일 협력자로 등재됐다”며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 저는 해석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짧은 글 속 중의적인 표현 몇 개로 시비 거는 건 문제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뛰어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바꾸려면 그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학자의 세밀한 연구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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