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터널 라디오 청취권은 보편적 기본권
[경일시론]터널 라디오 청취권은 보편적 기본권
  • 경남일보
  • 승인 2023.10.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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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라디오는 운전자의 가장 친숙한 벗이다. 먼 길 혼자 가도 외롭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동반자다.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영영 잊혀 질 것 같았지만, 오산이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동차와 함께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필수 미디어로 자리매김했다. 요즘엔 어떤 미디어도 넘볼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복잡한 도로상황을 실시간 전해주는가 하면 다양한 생활정보는 척척박사다. 감미로운 음악방송은 최고급 명품 오디오 부럽지 않다.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시사방송 프로그램도 이제는 라디오 몫이다. 내로라는 정치인들도 라디오 시사프로에 줄을 설 정도다.

재난이 발생하면, 라디오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집중호우나 강풍, 터널·교량 붕괴, 대형 사건사고 등 각종 재난 발생 시 라디오는 국민안전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재난발생 시 재난방송 주관사인 한국방송이 신속하게 재난방송을 송출하기 때문에 반드시 챙겨야 할 재난필수품이다. 라디오의 역할이 커진 만큼 운전자의 라디오 청취권은 이제 보편적 권리에 해당한다. 각종 재난에 대비한 인명피해 예방과 함께 운전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방송 사각지대가 없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주 이용하는 진주-함양 간 국도 3호선만 봐도 그렇다. 시내를 벗어나 도로 터널에 들어서는 순간 라디오가 ‘지지직~’하면서 먹통이 된다. 터널이 끝날 때까지 몇 초에서 길게는 수십 초 동안 짜증을 유발하는 소음공해에 시달려야 한다. 감미롭던 클래식 음악이 최악의 소음으로 돌변한다. 급하게 소리를 낮추거나 끄면 자칫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순간적인 라디오 먹통은 운전자의 ‘라디오 청취권 박탈’은 물론 운전자를 재난위기로 몰고 가는 중대한 ‘인재’가 될 수 있다. 터널 안의 라디오 청취권 박탈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데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 실제 터널 사고발생시 큰 인명피해가 속출하는 사례가 말하고 있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2014년 6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을 개정, 터널과 도로 등에서 라디오와 DMB를 수신할 수 있는 중계설비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터널이 대피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데다 생명, 안전과 직결된 재난방송과 민방위 경보를 원활하게 수신하기 위해서다. 2015년부터 2년에 한 차례씩 전국의 △도로터널 △철도터널 △지하철 내 라디오(FM)·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수신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2021년에 실시한 전국 터널의 라디오 수신 실태를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취약했다. 법만 만들어 놓으면 뭣하나 싶다. 철도·도로·지하철에 설치된 터널 4608개 중 라디오 수신이 양호한 터널은 1525개로 33.1%에 불과했다. 철도터널 668개 중 622개, 93%가 수신불량이다. 도로터널도 2900개 중 2038개, 70.3%가 불통이었다. 특히 경남지역 도로터널 사정이 전국에서 가장 나빴다. 도내 도로터널 360개 중 300개, 83.3%가 수신불량으로 조사됐다. 도내 대다수 터널이 라디오 먹통지대라는 이야기다.

올해도 터널 재난방송 수신 상태 조사 결과를 내 놓아야 할 시점인데 아직 발표되지 않아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2년 사이 새로 생긴 일부 터널 외에는 재난방송 수신 상태가 특별하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동안 예산투입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터널 안 라디오 수신불량은 운전자의 보편적 기본권 박탈을 의미한다. 단순히 라디오가 잠시 안 잡히는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될 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강국이면 뭣하나. 지하만 들어가면 라디오가 먹통인데…. 정부가 다 못한다면, 지방정부라도 챙겨야 한다. 동네 부끄럽단 소리 안 듣기 위해서라도, 경남도가 발 벗고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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