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누구나 직업의식은 숨길 수가 없다. 평생 우리말과 글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터라 어딜 가면 늘 밖에 걸어놓은 글들에 눈이 가곤 한다. 글 내용이 맞는지 표현이 올바른지를 살피게 된다. 틀린 글을 보면 고치고 싶은 충동이 나도 모르게 일어난다.
남강가를 걸을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현수막이 하나 있다. 배드민턴 회원 모집 현수막이다. 허가를 받고 걸어 놓았겠지만 아름다운 남강의 정경을 막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에 어법에 맞지 않은 글을 걸어 놓아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썩 편치 않다. ‘둔치’로 순화해 쓰면 좋을 말을 일본식 한자어 ‘고수부지’로 써놓고 ‘연령제한 없음’이라고 해야 할 표현을 ‘없슴’으로 맞춤법에 맞지 않게 적어 놓았다. 더구나 그곳은 축제로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진주가 교육도시가 아닌가. 부끄럽다.
요즘 집 밖 한 발자국만 나가면 온통 현수막(펼침막, 플래카드) 천지다. 특히 정치인들의 현수막은 법도 규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에 마구 내걸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에서도 마찬가지다. 난잡하기 이를 데 없다. 눈을 뜰 수 없는 현수막 공해다.
거리에 내 거는 현수막글은 함부로 걸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보지 않는 글은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 밖에 내 걸어 남들이 볼 수 있는 표현물은 그것이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공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윤리나 도덕 등 사회적 규범이나 법률에 벗어나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 비속어나 욕설 등을 함부로 적어서도 안 되고 현수막 글은 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는 표현물이기 때문에 언어질서와 언어순화 그리고 언어 교육적 차원에서도 언어규범에 벗어나는 글로 적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른바 ‘국어기본법’이 있고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이란 법까지 있는 것이다. 옥외광고물법 9조(광고물 등의 한글 표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에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국어기본법이나 옥외광고물법 그리고 지자체의 조례들이 제정돼 있지만 실제 거의 유명무실한 것이 사실이다. 국어기본법이나 각 조례마다 국어심의위원, 국어진흥위원회나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이 또한 있으나마나 한 듯하다. 이름만 위원회가 아니라 법이나 조례에 규정한 대로 공공언어와 옥외광고물들을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심의하고 관리해야 한다. 공공언어와 옥외광고물들을 정기적으로 심의한다거나 옥외공공 알림판을 설치하기 전에 미리 전문위원이나 전문기관이 꼼꼼히 점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설치물 글은 한번 설치하고 나면 그것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거기에 틀린 글이 있다면 그 글을 볼 때마다 늘 눈에 거슬리고 불편하다. 그래서 인쇄물이나 돌에 새긴 글은 신중하게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글은 글쓴이의 얼굴이고 인격이다. 공공기관이나 단체가 밖에 내걸거나 설치하는 글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 글은 그 기관이나 단체의 교육 수준과 교양 그리고 지적 수준을 말해준다.
진주시는 교육도시고 문화도시이며 진주시민은 또 교양이 있는 시민이 아닌가. 그래서 진주시 길거리마다 걸어놓은 모든 현수막이나 알림글들은 반듯하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어법에 맞는 글이었으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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