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효 논설위원
율곡 이이는 동호문답을 통해 ‘잘하는 정치’와 ‘못하는 정치’를 이렇게 구별했다. “군주의 재지가 보통사람보다 출중하여 호걸을 잘부리면 경우와 재지는 부족하지만 어진이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를 잘하는 정치라고 했다. 반면 “군주가 자기의 총명함을 믿고 신하를 믿지 않는 경우와 간신의 말을 지나치게 믿어 귀와 눈이 가리어지는 경우”를 잘못하는 정치, 즉, 문란한 정치라고 했다.
군주와 신하의 유형도 구별했다. 잘난 정치를 하는 군주를 성군·명군이라고 했고, 못난 정치를 행하는 이는 폭군·혼군(암군)·용군이라고 했다. ‘욕심이 지나치고 바깥의 유혹에 빠져 백성의 힘을 다 빼앗아 충언을 물리치면서 자기만 성스러운 체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군주’를 폭군이라고 했다.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하지 못해 현명한 자 대신 간사 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하는 군주’를 혼군이라고 했다. ‘나약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만 되풀이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군주’를 용군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군·명군 시대에는 중신·충신·직신이 많았고, 폭군·혼군·용군 시대에는 권신·간신·사신이 활개를 쳤다. 역사상 최고 성군·명군으로 칭송되는 조선 세종 시대에는 황희·맹사성·고약해 등 중신·충신·직신이 많았다. 중국 역사에서 명군으로 꼽는 당 태종 시대에도 위징·방현령·장손무기 등 충신과 직신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공통점은 신하들은 직언과 충언을 꺼리낌 없이 했고, 군주는 아무리 신하들이 자기에게 독설을 퍼부어도 역정을 내지 않고, 그 간언을 잘 받아들여 언제나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들었다. 반면 폭군이었던 연산군 시대에는 임사홍·유자광 등 간신이 득세했다. 연산군은 이들을 중용했고, 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백성은 도탄으로 신음했다. 그리고 연산군과 간신들은 스스로 공멸했다.
오늘날에는 일부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한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군주다. 우리나라도 국민이 군주인 나라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당 대표, 국회의원 등 권력가가 곧 군주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자, 국민의 신하일 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보면 ‘국민이 군주’라는 게 무색하다. 국민의 신하임에도 군주인양 허장성세를 부리고 이도 있고, 자기편 대장만을 떠받들고, 맹종하는 간신들만 있을 뿐이다. 공익 처럼 보이게 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파당을 일삼고, 거짓말·모함·아첨·협박을 꺼리낌도 없이 하는 뻔뻔함과 몰염치, 후안무치한 간신들만 득실거릴 뿐이다. 중신·충신·직신은 없고, 가짜 폭군·혼군·용군과 권신·간신·사신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그럼에도 군주인 국민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간신을 당대에 심판과 단죄가 가능하도록 국민이 깨어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못한 게 현실이다. 국민이 깨어있지 못하고, 어리석으면 온통 간신의 세상이 되고, 국가는 패망의 길을 걷게 되고, 국민은 불행해진다. 간신을 발을 붙일 수 없게 국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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