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가을 속에서
[경일춘추]가을 속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23.10.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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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


지방 문화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가 막을 내리고 가을바람이 지나간 뒤 촉석루를 찾으니 미처 물들지도 못한 푸른 잎들이 힘 빠진 모습으로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공기마저 서늘해 가을 타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시간이다.

겨우 돌 지난 손녀를 데리고 와 걸음마 연습시키던 그 애가 벌써 10살이다. 세월의 빠름을 손녀를 통해 느낀다.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소리소문없이 다시는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부고도 없이 가족장으로 치렀단다. 초등학교 기별 체육대회서 같이 파이팅! 하던 모습이 선하다. 하나둘 낙엽 가듯 칠순이 다가오니 스러져간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나뭇잎은 다시 새봄 오면 돌아오겠지만 한 번 떠난 인연은 돌아오지 않음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인연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

얼마 전 읽은 글에 ‘인생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연극’이란다. 허투루 시키는 연기는 아무것도 없다. 고민 하나, 고통 하나, 실수 하나에도 반드시 목적이 숨어 있다.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영적 성장의 깊이도 깊어진다. 고통은 내가 맡은 배역의 일부다. 고통을 피하는 것은 곧 배역을 거부하는 것이다. 배역을 거부하는 것은 곧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을 거부하려고 하니 못 견디게 고통스럽다. 하지만 배역을 받아들이는 순간 고통은 기쁨이 된다. 니체는 “살아가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역경도 견뎌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인생은 고해라면서도 오래 살고 싶어 안달이다. 자기만큼은 오래 살 거라는 착각과 바람 속에 젊음의 활력과 쾌감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족쇄다. 욕망과 쾌락은 이루지 못하면 괴롭다.

노인이 되면 욕망이 줄어 족쇄로부터 해방된다. 젊음이 많이 갖지 못한 행복에 대한 기억도 행복이며 자기가 이룬 것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 또한 행복이다. 공자님 말씀처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달팽이처럼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다. 허물없는 사람 없고 상처 없는 영혼 없듯이 구름이 지나간 하늘 길에는 흔적이 없다.

구름 속에 세상사 다 들었다. 구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바람에 흩어지고 모든 부귀영화 권력도 죽으면 빈손이다. 태풍 지난 맑은 하늘 공기처럼 우리네 인생도 큰 고비 지나고 나면 무거운 짐 내려놓은 지게처럼 편안해진다. 서산 넘어 쉬러 가는 노을처럼 우리 인생 잠시 쉬었다 가자. 내면의 아름다움 채워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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