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구 건축가
홍콩 무술영화를 보면 학문과 수련을 게을리 하고 천방지축이던 선한 주인공이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온다. 곧이어 아주 악한 무술의 고수가 등장하고, 주인공의 가문은 그에게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다. 울분을 삼킨 주인공은 무림의 절대고수를 찾아가 각고의 수련 끝에 고수의 경지에 이르고, 그들을 물리친다. 이처럼 세상에는 악한 사람이 있고, 그를 응징하는 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 안방 드라마는 조금 다르다. 절대 선도, 절대악도 없다. 스토리는 상황을 응시하며 배려하고 합의한다. 안방극장의 대명사인 막장 드라마도 어느 시점에서는 합의에 도달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도시 발전이 한국 드라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이 상황을 응시한다. 관찰하고 음미하며 합의하고 방향을 결정하고 발전한다.
집 밖을 나섰을 때 아름다운 거리가 맞이해 준다면 얼마나 좋은가. 큰 팽나무가 나를 반기고, 그 그늘 아래 있는 벤치에서 편히 쉴 수 있다면 또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대 흐르는 강에 발을 담그고, 강가 모래톱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요즘 이 도시에 사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무질서하게 걸려있는 현수막이 그러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쓰레기가 그러하다. 현수막의 글귀는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살을 파고든다. 온갖 쓰레기는 악취가 난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러한 것들도 삶의 한 모습이자 도시의 이면이 아니겠나 싶지만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도시는 이미 아름답다. 그러나 조금 더 세련되게 새로워져야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면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다. 도시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아닌, 상호간 배려하고 합의하며 개선해나가는 도시는 다시 우리를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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