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억지를 부리는 사람
[경일포럼] 억지를 부리는 사람
  • 경남일보
  • 승인 2023.10.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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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억지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낮은 등급은 그냥 웃고 지나치면 되지만 최상급은 거의 병적인 수준입니다. 제가 한번 최상급 억지를 부려보겠습니다. 모두 아시는 단군 할아버지에 대한 억지입니다. 단군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홍익인간의 ‘홍’은 붉다는 뜻을 가진 한자와 음이 같습니다. 물론 홍익인간의 ‘홍’은 넓을 홍입니다. 글자도 ‘弘’과 ‘紅’이어서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글자가 달라도 음이 같으니까 뜻도 같다고 우깁니다. 우기다 보면 붉은 글자와 음이 같으니까 최소한 불그스레하다고도 합니다. 붉은 색도 여러가지 이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조금씩 달라도 모두 붉은 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약하다 보면 붉은 사람은 빨갱이와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빨갱이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아무리 오래전에 사신 분이라 해도 빨간색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지금 이 땅에서는 쫓아내야 합니다. 물론 단군 할아버지에게는 당치도 않는 상상입니다. 설령 음과 훈이 모두 같다 하더라도 단군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가 해보는 상상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요즘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지금과 전혀 다른 시절이었습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목숨을 걸고 일본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독립운동하던 분들은 그 나라 정부와 만나면서 지원받기 위해 협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소련에서 독립운동하던 분들도 그 나라 정부와 만나면서 지원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해외에서 독립운동하신 분들은 모두 이런 식이었습니다. 김구 선생도 중국 공산당과 협력했습니다. 100여 년 전인 1927년,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을 위해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습니다. 미국은 그런 소련과 2차대전에서 힘을 합쳐 일본과 싸웠습니다.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와 협력했느냐를 갖고 존경도 하고 비난도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어느 나라는 되고, 어느 나라는 안되고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나라라면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참여했습니다. 이걸 갖고 지금의 잣대로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억지입니다.

제정 러시아가 무너진 후에 백파와 붉은파로 나누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독립군 중에서는 백파와 연결된 분도 있었고, 붉은파와 연결된 분도 있었습니다.

대한독립군 지휘부에서는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을 묵인한 미국을 비판하는 참모와 러시아를 힐난하는 참모가 서로 언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홍범도 대장은 싸우는 참모들에게 “그럼 우리가 어찌해야 한다는 것이오?”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일본과 싸워야 한다고 대답하자 홍범도는 지켜보던 다른 부하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잘 들었소? 우리는 일본과 싸우면 되는 것이오. 로씨아가 조선독립을 위해 싸워주오? 아니면 아미리가가 조선독립을 위해 싸워주오?” 홍범도 장군은 이런 분이었습니다. 불세출의 영웅이요, 전설입니다.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2018년, 제99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우리 군장병들이 사용한 5.56㎜ 소총 5만 발 분량의 탄피 300㎏을 녹여서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만들어 육군사관학교 종합강의동인 충무관 앞에 세웠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투철한 군인정신은 사관생도들에게 참군인의 귀감이 된다”며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불과 5년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육군사관학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동상을 옮기려고 합니다. 공연히 억지를 부리지 말고 그냥 제자리에 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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