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가을밤의 想念
[경일춘추]가을밤의 想念
  • 경남일보
  • 승인 2023.10.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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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학부모교육 강사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학부모교육 강사


나는 해마다 가을밤이 되면 불면의 시간으로 힘이 든다. 금년은 너무 더워 그런지 해마다 창문에 찾아오는 매미의 노랫소리도 듣지 못하고 여름을 보냈다.

망진산 노을 보니 지는 해 먼 산에 가득하고 이룰 수 없었던 꿈은 슬프다. 10월에 빚을 진 수많은 사람들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기억한다. 풀은 슬퍼 우는 게 아니고 살아있어 운다는 말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프다.

잊혀진 계절에 가슴 시린 이별 생각이 나면 더 슬프다. 사랑에 빠진 단풍은 빠알갛고 지나간 사랑은 낙엽처럼 힘이 없다. 내 모습 낙엽 닮아 가니 이제사 내 삶을 돌아본다.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한 때뿐인 삶은 결코 아닐 것이다. 욕망은 갈증 속의 소금물처럼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탐욕의 창고 속에 욕망을 채워가는 삶은 결코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인생이 어디쯤 왔는지, 내 삶의 잔고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신라 말기에 최치원도 비가 오는 가을밤에 자신을 알아줄 지기(知己)가 없는 외로움을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리, 삼경 깊은 밤 창밖에 비는 내리고, 등불 앞에 초조한 심사는 만 리를 달린다”라며 마음과 일이 서로 어그러져 세상과 방황하는 심회를 피력했다.

어느 교수는 어머니 강의 때 노트에 소중한 사람을 써보라고 한 뒤 다시 덜 좋아하는 이름을 하나씩 지워보아라! 한다. 사람들은 남은 세 단어! 자식, 남편, 부모란 단어 앞에서 울면서 부모, 자식, 남편 순으로 지웠다.

부모는 세월이 가지고 가고 자식은 성장해 떠나고 결국 남편만 남는다. 손녀의 재롱에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잠시 잊은 순간이 미안하다. 진정 사랑의 깊이는 같이한 시간의 양(量)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까 회의가 든다.

석인성시(惜吝成屎)라 아끼다 똥 된다. 제일 값비싼 그릇은 귀한 손님 오면 쓴다던 그 그릇은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이 가을 낙엽 속에 나는 또 계절을 묻지만 숨어 핀 구절초의 가을 향기처럼 은은히 스러져 가고 싶다. 아파트 담벼락을 넘어가는 담쟁이의 남은 잎들도 태연한 채 붉어진 낯으로 겨울의 책장을 바쁘게 넘기고 있다. 금년에도 스치는 가을바람이 나를 아프게 한다. 영원히 내 청춘은 머물러 있을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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