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서울로 가라?
진주에 거주하는 김 모(58)씨는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위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고 곧바로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는 게 좋다는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다. 김씨는 “다행히 수술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한동안 서울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프면 무조건 서울의 대형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들은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1년 통계를 보면 경남도민이 쓴 전체 진료비는 7조2336억원, 이중 경남의 밖에서 진료를 받은 도민의 수는 89만여 명에 이들이 사용한 진료비는 1조6718억원(23.1%)에 이른다. 2017년 대비 경남 밖 진료비가 41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인근 부산의 경우 전체 진료비 중 외부 비중이 10.5% 수준에 그친 것과는 비교된다. 도내에서 쓰여야 할 진료비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은 지역 의료계에서는 큰 손실이다.
이 같은 문제는 거주지와 동일한 지역의 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의 비율을 뜻하는 ‘입원환자 자체충족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남의 경우 2020년 기준 76.6%로 2016년 대비 1.6% 감소했다. 반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은 입원환자 자체 충족률이 80% 이상이다.
경남 밖에서 진료가 아닌 입원 치료를 한 이들도 2021년 기준 13만 7808명에 지출한 입원비만 9096억에 달한다. 더욱이 KTX 등 교통의 발달은 지방의 환자들이 서울로 유출되는 의료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이유 중 하나다.
이언상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경남 외부에 사용되는 진료비가 많고 입원환자 자체 충족률이 낮다는 것은 지역 간 의료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면서 “의사 등 의료 기반 부족으로 적절 시기에 지역 내 의료이용이 어렵고, 타 지역의 의료서비스 이용에 따른 이동시간, 교통비, 숙박비 등 추가적인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치로 보는 지역 의료공백
국립중앙의료원의 2020년 기준 응급의료현황 통계를 보면, 경남의 인구 10만 명당 응급의학전문의 수는 2.0명으로 전국 4.2명보다 2.2명이나 적다. 서울시 9.0명, 강원 8.1명, 광주 6.6명과 비교해도 경남의 응급의료인력 부족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원시, 진주시, 김해시, 양산시를 제외하고 14개 시·군이 응급의료취약지로 지정돼 있는 상황이다. 응급의학전문의가 없는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일반의사가 응급의료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의 질을 확보하기 어렵고 돌려막기 등 업무부담 역시 가중되고 있다.
이는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의 의료인력 이탈 가능성을 높이고 다시 남은 의료 인력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문기 경남도응급의료지원단장은 “군 단위 지역에는 대부분 한 개의 응급의료기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응급 중증 환자의 최종치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주로 상급기관인 센터급 이송을 요구하면서 쏠림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응급상황과 외상, 심혈관질환 등은 30분에서 1시간 안에 빨리 처치나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영역인데, 만약 적절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대도시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시간의 소요로 사망이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적절한 치료를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사망을 뜻하는 ‘치료가능 사망률’은 지역 의료 불균형을 대표하는 수치로 통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회 최영희 의원에게 제출한 ‘치료가능 사망률 현황’을 보면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전국 평균은 43.7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경남은 47.28명으로 인천(51.49명), 강원(49.61)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높았다.
서울과 대전, 제주, 경기, 세종시를 제외하면 농어촌이 많은 경남과 전남, 전북 등 대부분 시·도가 평균 이상의 수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일깨워준 보편적 가치는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프면 서울로 가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도 공공의료가 보다 확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이유다.
임명진·박철홍기자 sunpower@g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상급병원 유치는 제주도민의 숙원”
강동원 제주특별자치도 도민안전건강실장
제주도는 섬이다. 아무리 교통편이 발달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육지를 오가는 게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다. 코로나19때도 그랬다. 육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위기 상황을 해결해 왔다. 그래서 제주도는 공공의료의 비중이 전국에서도 높은 편이다, 그런 제주도가 딱 하나 가지지 못한 게 있다. 전국 45곳에 달하는 상급병원이 유일하게 제주도만 없다.
-제주도의 의료 현황은?
▲제주도의 인구는 67만여 명이지만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외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의료 수요가 매우 높다. 상대적으로 서부지역이 낙후돼 있다. 그래서 전국 최초로 민간협력 의원을 두고 있다. 건물이나 시설을 도비로 지어주고, 독립채산제로 운영을 하는 방식이다. 농촌지역에 경증 응급환자들이 큰 병원으로 오지 않고 지역에서 최대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환자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히 응급상황에서 비응급환자들이 응급실에 몰리거나 전원 조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의료진의 확보 문제는?
▲의료진의 부족은 지방의 공통된 현상이라서 특별한 대안은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제주도는 섬이고, 상급병원이 없다. 제주도에도 의과대학이 있지만 아직 3차 의료기관으로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도민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육지로 의료 원정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통계를 보면 2021년도에 연간 1만 6000여 명에, 병원비만 1000억 가량 소모되고 있다.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을 합치면 액수는 훨씬 커진다.
그래서 상급병원 유치는 제주도민의 숙원사업이다. 유치만 된다면 우수한 의료진이 올 수 있다. 지금의 의료 현실은 아프면 서울로 가라는 건데, 똑같은 의료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제주도민의 상급병원 이용률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제주도민이 제일 혜택을 못 보고 있는 격이다.
-걸림돌이 있다면?
▲지금의 상급병원 평가기준에 따르면 제주도는 서울권역에 묶여 있어 서울에 있는 병원들과 경쟁해야 한다. 중증환자 비율, 병상수, 의사 수 등에서 경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제주도만의 별도 권역으로 평가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제주도민은 70만에 불과하지만 그것만 생각해선 안 된다. 제주도내 응급실을 가보면 20~30%는 관광객들이다. 섬이라는 특수성도 정책적으로 고려해 줘야 한다. 제주대학은 국립대이긴 하지만 의대 정원이 30명 정도로 작다. 정원을 늘려주지 않고서는 경쟁이 힘든게 현실이다. 최소한 의료분야에서 지방의 특수성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