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몰입의 가치와 즐거움
[경일춘추]몰입의 가치와 즐거움
  • 경남일보
  • 승인 2023.11.0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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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김종윤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중·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국어 교과서에서 기억나는 작품 하나가 있다.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이라는 짧은 수필이다. 이 수필에는 집에 가는 길에 (빨래)방망이를 사려는 한 손님인 ‘나’와 ‘방망이를 깎는 노인’이 등장한다. 나는 집에 가는 차 시간에 맞춰 방망이를 사려고 했는데, 노인은 아직 다 완성이 되지 않았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차 시간을 놓친 나는 마음이 언짢은 상태로 기다리다가 노인이 다 되었다고 하자 방망이를 집에 들고 간다. 나중에 아내가 이 방망이가 참 좋다고 하자, 나의 마음이 풀리고 노인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수필을 보고 흔히들 장인 정신의 숭고함을 다루고 있다거나 사라져가는 장인이나 전통에 대한 아쉬움을 주제로 했다고 한다. 이것도 맞는 이야기이다. 나는 방망이를 깎는 노인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즐기며 몰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만약 어떤 일이 명확한 목표, 뚜렷한 결과, 자신감, 힘에 부치지 않은 난이도, 정돈된 분위기를 줄 수 있다면,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운동을 하거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맛보는 희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몰입은 자신의 힘을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흔히들 언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는 말로도 표현된다. 무의미하고 반복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벗어나는 일 중 하나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집중하면서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도중에 실패도 할 수 있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나중에는 조금 더 나은 성취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몰입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은 외부의 평판이나 결과 자체보다도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잔잔하고 즐거운 내적 감정, 스스로 하는 일에서 느끼는 뿌듯함, 이를 통해 경험하는 삶에 대한 충만함이 아닐까?

내 아내 역시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이다. 아내가 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서 ‘게재 가능’ 판정을 받고 수정 없이 논문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그러면 오탈자 몇 개 고쳐서 내면 될 터인데, 아내는 대여섯 시간이나 논문을 다시 읽고 고치고 하였다. 처음엔 옆에서 보기에 답답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내는 논문 쓰기에 애정을 가지고 몰입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나는 언제 내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있었지?’라고 되물어 보았다. 스스로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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