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죽은 시인의 대학 사회
[경일포럼]죽은 시인의 대학 사회
  • 경남일보
  • 승인 2023.11.0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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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옛 그리스의 호메로스에서부터 시작한 문학이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셰익스피어를 거쳐 이제 인류의 위대한 문화재가 되었다. 문학은 학생들의 기본적인 교양 교과목이다. 학교에서는 문학이 학생들의 감성을 길러주고 영혼을 일깨워주는 교양 과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 도처에서 문학을 교양과목의 ‘코어커리큘럼’으로 인정하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장애자로서 수필가와 영문학자로서 짧은 생애를 살다간 장영희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국민 교수였다. 그가 살아생전에 다음의 일을 소개했다. 미국의 의학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문학에 관한 식견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깜짝 놀라서 물었단다. 전공도 아니신데 어찌 이렇게? 대답이 이랬다. “하버드 의대나 MIT 공대의 교양필수는 문학이 절반 이상입니다.(‘책, 세상을 탐하다’, 2008, 139쪽)” 나도 이 대답이 놀라웠다.

나는 작년 8월 말에 정년퇴임을 했다. 나보다 유능한 젊은 문학교수가 나를 이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선의는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부 교수들은 내 정년퇴임 이전부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문학을 학교에서 추방하기 위해 온갖 잔꾀를 부렸고,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남의 영역 빼앗기에 혈안이 되었다. 문학교수를 뽑을 것인가, 말 것인가, 문학을 교양과정으로 남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학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의 문제인데, 학교의 구성원들도 나 몰라라 한다. 이번 일이라면, 남의 과 문제에 관여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감성, 양심, 정의를 말하려면.

어쨌든 절충안이 나왔다. 문학이 아닌 문학교육을 전공한 교수를 뽑겠단다. 국립과 국립법인화가 서로 다르듯이, 문학과 문학교육은 전혀 다르다. 문학이 도(道)라면, 문학교육은 기(器)다. 문학이 정신이라면, 문학교육은 육체다. 문학을 없애고 문학교육을 강화하자는 건 얼빠진 몸에다 체중을 부풀이자는 얘기다. 지면사정으로 이것저것 말할 것도 없이 문학과 문학교육의 첨예한 차이 및 대립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영화 속의 고등학생들은 획일적인 문학수업에 반발하여 죽은 시인의 사회, 즉 작고시인들의 시를 연구하는 비밀 동아리를 만든다. 이것이 들통 나 배후자로 지목된 존 키팅 선생이 해고를 당한다. 문학교육과 아동문학이 아닌 문학 즉 순(純)문학을 두고, 프랑스에서는 ‘벨레뜨흐’ 이를테면 미(美)문학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자기 나라의 순수하고도 심미적인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특히 국민적으로 존경한다. 프랑스의 문화적인 명예와 자존심이 여기에 있다.

내가 정년퇴임한 게 아니라, 문학이 학교에서 추방을 당했다. 세계적인 사례나 상식의 기준에서 보면, 문학교수가 없는 대학이 과연 대학인가? 앞으로 학생들의 젊은 감성이 시들어가고 청년의 영혼이 피폐해 가는데, 문학의 가치를 모르는 학교는 이런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명예교수로서 더 이상 강의하지 않기로 했다. 그 가치를 전혀 모르는 학교가 마침내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될 것이 뻔해서다. 문학이 이제 교문을 나서 긴 유형(流刑)의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내 어찌 문학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을 건가?

영화 속의 존 키팅처럼 떠나는 게 맞다. 바람결 따라 낙엽처럼, 교문 밖으로 함께 나가는 게 옳다. 어느 책에선가 얼핏 본 7언 ‘화비자개춘풍래(花扉自開春風來)’가 떠오른다. 꽃의 문이 저절로 열려야 봄바람이 불어온다. 출전도 모르는 이것에 내가 스스로 대구를 달아보면, 낙엽문외추풍거(落葉門外秋風去)다. 이를테면, 낙엽은 문밖으로 가을바람과 함께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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