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저는 느티나무입니다”
[기자의 시각] “저는 느티나무입니다”
  • 김성찬
  • 승인 2023.11.09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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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창원총국 취재부
김성찬 기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느티나무였습니다. 40년 전 경남도청사가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전한 것을 기념해 경남도의회 뒷편에 심었던 식수(植樹) 중 하나가 저였습니다. 저는 도목(道木)입니다. 경남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뜻이지요. 자랑 한마디 더 보태자면 저희들은 민족 대대로 마을을 지키는 상징이었습니다. ‘당산목’이라고도 하고 ‘정자목’이라고도 불리면서 말이지요. 옛날에는 20리마다 심어서 ‘스무나무’라고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 가지가 넓게 퍼져 제법 근사한 수형(樹形)이 나옵니다. 더 자라면 수고(樹高)가 40m까지, 흉고직경(胸高直徑)도 2m까지 커져 이른바 ‘위용’이라는 것도 생기지요.

저희들은 생육환경만 허락한다면 200년 쯤은 너끈히 살아냅니다. 부산시 장안읍에 계시는 어르신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나이가 많으신데 1000살도 훨씬 넘게 살아내고 계십니다. 거기에 비하면 고작 40살 남짓했던 저는 명함도 못내밀죠. 그래도 그 40년 동안 우여곡절 많았습니다. 풍우한서(風雨寒暑)는 별문제 아닙니다. 영하 80도에서도 나무는 얼어죽지 않으니 말 다했죠. 대신 곰팡이나 바이러스, 세균들이 못살게 굴면 좀 피곤해집니다. 탓에 누렁병이 들거나 흉한 반점이 생기기도 했고, 몸 일부는 부후(腐朽)하기도 했습니다. 곤충은 또 어떻고요. 알락진딧물, 거위벌레, 벼룩바구미, 깍지벌레, 나무좀 등등 그 수를 세기도 벅찰 정도의 녀석들이 몸에 붙어서 어찌나 설쳐대는지. 게다가 새나 들짐승들 이야기는 말하면 입 아플 정도죠. 그래도 다 이겨내고 40년을 살았습니다. 자연의 공격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기작(機作)이 저희들에게는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전기톱은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어느 한날 한시. 저와 제 동료들 100여 그루는 영문도 모른채 그렇게 허리가 잘려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지난달 말 경남도의회가 의회 청사 증축공사를 하면서 건물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벌목, 폐기 처분해 논란이 일었다. 나무를 이식해 살렸어야 하지 않냐는 원망들이었다. 물론 큰나무 한 그루 이식하는데만해도 얼마나 많은 품과 노력, 그리고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지 잘 알기에 도의회만 손가락질 하기도 뭣하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머리라도 좀 맞대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만큼은 너무나도 짙다. 단풍 짙은 계절, 나무에 눈길 가는 시간도 예전보다 많아졌다. 그럴때마다 400년 뒤에도 살아 그늘을 내어주고 있었을지 모를 그 느티나무가 한동안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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