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655)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655)
  • 경남일보
  • 승인 2023.11.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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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이 나라 최연장자 김남조 시인 10월에 지다(4)
지난 회에서 필자는 문효치(전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장, 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시인의 칠순기념 시전집 출판기념회 이야기(앰베스더 호텔, 2013년 10월)를 하던 중이었다. 기념회 순서에서 김종길(시인, 고려대 명예교수), 김남조(시인, 숙명여대 명예교수) 등의 축사에 이은 「저자의 인간과 문학」이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이었다.

필자는 대학동기로서 문 시인은 한 분 스승 밑에서 시를 배운 같은 문도요, 동아리의 동인이요 등단 시기의 경쟁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작품이 어느샌가 전통서정의 물레를 돌리는 그 품새가 비슷하여 4년의 우정이 시정으로 단단해졌다. 무엇인가,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은 같고 고민도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는 ROTC 장교 훈련을 받을 때 필자는 학교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 하사로 입대(연좌제로)하여 안착한 서정에 혼란이 왔으나 친구인 필자에게는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고민 번뇌는 제대후 직장생활의 중심부를 가로질렀다. 그는 여위어만 갔고 병이 없다는 병원의 진단과는 달리 몸은 한없이 쇠약해졌다. 그는 그에게 역사 시대가 서정으로 버티기에는 결코 온건하거나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죽지 않고 살았다.

그의 시에서 ‘백제’를 소재로 하면서 놀랍게도 무령왕릉의 유적(1971년 발굴)으로 죽은 백제가 살아났듯이 그는 숨결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는 충남 공주 금성동 성산리 현장을 방문하면서 그 신비한 유적에 진땀이 나고 그의 내면에는 이미 백제의 부활 같은 꿈틀거리는 피돌림이 시 편편으로 이어졌다. 왕의 관장식, 왕비의 관장식, 금제 귀걸이, 금제 목걸이, 왕비의 베개, 무령왕릉 지석, 석수, 은팔찌, 청동거울…. 시로서 짚어 나가는 사이 그 제품들에서 생기를 얻고 눈빛을 닦았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런 시대적 현장의 능선을 오르내린 문효치의 시는 서정에 이상이 없겠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었다. 마치 이 자리에 와 계시는 K선생의 시, 일테면 「남한에서」와 같은 시대 능선을 타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될 터이다. 저는 그 「남한에서」를 강의시간에 더러 예시하기도 했는데 “북한 여인아/ 내가 콜레라로 그대의 살 속에 들어가/그대와 함께 죽어서/ 무덤 하나로 우리나라의 흙을 이루리라”(시 전문)는 짧은 시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를 떠올려 보고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시대적 현실의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참하고도 장렬한 시를 닮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시인의 지나간 능선은 친구에게도 마음 놓고 말할 수 없고, 아버지에게도 원망(신춘문예 당선 소감)의 말을 세세히 쏟아낼 수도 없었던 그만의 몫이요 실존적 현실이어서 그 판단이나 지향은 아무도 이렇다 저렇다 간섭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 자리 같은 숨소리로 재생의 물레를 잣고 있을 뿐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까지가 필자의 「문효치의 인간과 문학」에 대한 말의 요지였다. 나는 이 말이 끝나고 김남조 시인과 같이 앉았던 그 원탁으로 돌아오니 앉기가 무섭게 김남조 선생이 “강선생, 오늘 이야기가 좋았어요, 훌륭해요”하고 언급하시는 것 아닌가. 순서가 마쳐지자 여기 저기서 사진 찍자는 소리 들리고 필자는 저녁 10시 진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 남부터미널로 달려왔다. 택시 잡기가 힘들어 유안진 교수가 마련해준 차를 타고 차 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

필자는 진주라 천리길, 3시간 30분의 긴 잠에 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잠이 들락말락한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유안진 시인의 목소리다. “행사 뒤 김남조 선생이 여류들 10여명을 호텔 지하카페로 불러 모으고 김선생께서 행사 강평을 하셨어요. 우리나라에는 시인을 둘로 나누어 볼 수가 있어요. 하나는 유명시인의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강희근 교수처럼 실력 있는 시인의 부류입니다 하고 상찬하는 것이었어요. 강희근 시인은 실력 시인의 면모를 보인 것이라는 김선생님 오늘 말씀은 참으로 적절한 것이었네요.”하고 전달해 주는 것 아닌가

필자는 그 시간 1984년 한국시인협회 마산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뵈었던 30년 전의 김남조 시인의 한복 두루마기 입은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잠이 오지 않고 오히려 의식이 뚜렷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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