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낙엽 한 잎 조용히 내 곁에 내려앉는다. 아무 일도 아닌 일이다. 계절이 깊어져 가을이 됐고, 가을이 되면 세상의 모든 나뭇잎은 철이 이르거나 늦거나 잎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그런데 그런 아무 일 아닌 일이 조용히 지금 내 곁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일은 아무 일이 아닌 일이 돼버린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김사인, 조용한 일
며칠 전 지인이 단톡방에 공유해 준 김사인의 시다. 가을 저녁 ‘그냥 있어 볼 길밖에’ 하릴없는 내가 아무 곳에나 앉아 있는데, 문득 낙엽 한 잎이 슬며시 내려와 앉는다. 그리고 말없이 나와 같이 있어 준다. 그 순간 낙엽에게서 느끼는 고마움. 그저 부스러질 수밖에 없는 존재끼리의 공감이 나와 낙엽 사이를 이어주면서 외롭고 허망한 순간을 이겨낼 힘을 얻게 해준다. 시인은 아마도 낙엽에게서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며칠 전 문화재청이 ‘포항 금광동층 신생대 화석산지’ 일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한다는 뉴스를 읽었다. 관련 자료에서 길이 10.2m의 거대 나무화석 서껀(∼이랑) 메타세콰이아,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 60여 종의 나뭇잎 화석을 볼 수 있었다. 모두 신생대 전기 마이오세(Miocene) 화석으로 약 2000만 년 전의 것이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2000만 년 전 나뭇잎이 잎자루와 미세한 잎맥까지 생생한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온 듯 보였다. 그 긴 세월을 돌아 내 앞에 나섰을 때는 분명 뭔가 이유가 있겠지.
지금 내 곁에 문득 슬며시 내려앉은 나뭇잎과 2000만 년 긴 세월을 오래오래 기다려 화석이 된 나뭇잎. 두 나뭇잎이 똑같이 감동적이다. 외롭고 유한한 이 고전물리학의 세계에서 하릴없는 내 곁에 말없이 조용히 다가와 준다. 힘내라는 뜻이겠지. 고맙다. 힘내야겠다. 이런 생각이 조용히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