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한 젊은 정치인의 말하기
[경일포럼] 한 젊은 정치인의 말하기
  • 경남일보
  • 승인 2023.11.13 15: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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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난 4일 부산 어느 대학에서 열린 한 젊은 정치인의 토크 쇼에서 그는 같은 당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로 말했다. 그리고 한국 이름 인요한이란 이름이 있음에도 그는 미국 이름인 미스터 린튼이라고 불렀다. 인 위원장은 사 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귀화 1호 인요한이다. 그는 한국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분명 한국인이다.

젊은 정치가의 발언에 여야를 불문하고 많은 국민들은 놀랐다. 그리고 그 무례함과 가벼움에 분노하고 있다.

같은 당 위원장이 그것도 홀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젊은 한 정치인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인사는 못할망정 문전박대를 하면서 넌 한국인이 아니니 돌아가라고 하는 투의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인종차별을 넘어서 인권모독이고 인간적 모멸감을 준 것이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정작 모른단 말인가.

한국 이름을 부르지 않고 외국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상대를 한국인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름과 호칭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인요한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 한국의 선교와 의료에 헌신하면서 뼛속까지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를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서울로 돌아가면서 차에서 끙끙 앓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좀 섭섭했다고 했다. 말은 한국식으로 ‘좀’이라고 애둘러 말하긴 했지만 얼마나 참고 참은 말인지 모른다. 삭히고 삭힌 말이다. 서자로 태어난 길동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할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었던 적서차별의 비인간적인 모멸감을 어릴적 우리는 소설로 배웠다. 어떻게 린튼이란 외국 이름을 부르면서 모욕감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정작 자기는 그 나라에서 유명한 대학을 나왔다고 자랑하면서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정치를 하고 있지 않는가.

젊은이는 말하길 “당신은 오늘 이 자리에 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여기서 내가 환자인가. 오늘 이 자리에 의사로 왔나.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 가서 그와 얘기하라.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의 일원이 됐지만, 현재로서는 우리와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원장은 현장에서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다”며 큰소리로 웃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른다운 말로 넘어갔다. 젊은 정치인은 다음날 “모욕을 주기 위해 영어로 한다는 의도가 있었다면 모든 말을 영어로 했을 것”이라며 “언어 능숙치를 생각해서 이야기했는데 그게 인종차별적 편견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언어의 능숙치로 본다면 인 위원장이 이 전 대표보다 능숙하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상황에 따라 말하는 언어의 능숙치는 인 위원장이 훨씬 높아보인다.

말은 곧 사람이라고 했다.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한 말도 그렇지만 서울에 환자가 있다고 한 말도 어떻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어떤 대상을 환자라고 하는 말은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환자는 몸과 마음이 병으로 힘들어 하고 고통받고 사는 사람이다. 이 땅에 병으로 고통받으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을 두고 어떻게 상대를 함부로 환자나 병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전에 나쁜 말로 환자를 병신이라고 했다. 몸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일컫기도 하지만 남을 낮추고 낮잡아 하는 비속어로도 쓴다. 그 젊은이는 얼마전에 안철수 의원에게도 아픈 사람이라고 했다. 함부로 말한 것은 그뿐만 아니다.

송나라 정이(또는 정이천)라는 학자는 다음과 같이 인생삼불행(人生三不幸)을 말했다.

少年登高科 一不幸 (어린나이에 등과하는 것이 첫 번째 불행이다) 席父兄弟之勢爲美官 二不幸 (부모형제의 기운으로 관직에 나가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다) 有高才能文章 三不幸 (문장과 재주가 특출난 것이 세 번째 불행이다)

시대가 변해 이 가르침도 다시 새겨야 하겠지만 속뜻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모두 잘 헤아려 볼 일이다.

한 젊은 정치인의 한없는 말의 가벼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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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2024-02-09 00:20:27
젊은 정치인들은 언행에 조심하라.
젊은 정치인들의 언어 태도를 보면 기성정치인 능가할 정도로 상대방을 헐고 뜯고 중상모략까지 하고 있으니 우리 정치의 장래를 어찌 밝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맏형이나 부모님 같은 선배의 정치인들에게 아무리 못마땅한 문제가 있어도 말을 어찌 함부로 할 수 있냐는 것이다.
현 정치에 대하여 불만이나 부족함이 보여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그에 맞는 젊은 정치인다운 정치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젊은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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