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1)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
[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1)노르웨이 오슬로 뭉크 미술관
  • 백지영
  • 승인 2023.11.14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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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뭉크미술관, 작품 도난 등 수난…2021년 이전 개관
당당한 13층·전시 공간만 7개 층 ‘이름값’하는 명소로
대표작 ‘절규’ 3점 30분씩 단독 공개 독특한 전시방식
‘작가미술관’만의 고민 공유 세계작가미술관협회 주목
뭉크미술관 7층 전시실 유리벽을 넘어 내려다본 6층 전시실 풍경. 벽을 가득 매우는 초대형 작품들을 윗층에서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미술관은 지역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경남에서 운영되는 등록 미술관은 모두 10곳으로, 이 중 5곳은 지역민의 세금이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공립 미술관이다. 주목할 점은 5곳 중 40%인 2곳이 ‘작가미술관’이라는 점이다. 최근에는 김해에서도 한 작가만을 위한 시립 미술관이 추진되고 있다. 작가미술관은 지역 미술사 전반을 아우르거나 다양한 미술 장르를 다루는 종합미술관 등과 달리, 한 작가의 예술과 삶을 대중에게 알리고 그 유산을 기린다. 이 때문에 지자체가 작가 미술관 건립에 나서면 지역 미술계가 ‘특정인이 아닌 지역 미술 전반을 다뤄야 한다’고 반발하거나 지역 의회가 ‘왜 작가 한 명을 유명하게 하는 데 세금을 투입해야 하냐’며 문제를 제기하는 일도 전국적으로 쉽게 목격된다. 반면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고 지역을 살리는 문화 동력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미술관도 적지 않다. 이에 경남일보는 7편에 걸쳐 국내외 공립 작가미술관 사례를 살펴보고 도내 공립 작가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한 관객이 헤드셋을 착용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피오르와 함께 펼쳐진 대자연과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의 나라 노르웨이. 적지 않은 여행객이 피오르와 오로라를 마주하기 위한 북유럽 관문 정도로만 여겨왔던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지난 2021년 새로운 랜드마크가 하나 들어섰다.

‘절규’로 널리 알려진 노르웨이 대표 화가 에드바르 뭉크를 조명하는 시립 미술관으로, 13층 규모의 초대형 미술관이다. 단일 작가에게 헌정된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관으로 꼽힌다.

오슬로피오르 인근, 오슬로 중앙역·오페라하우스에서 도보로 몇 분이면 닿는 중심지에 들어선 뭉크미술관은 2021년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오슬로에서 꼭 들러야 하는 장소로 급부상했다.

◇거장을 품기엔 벅찼던 옛 미술관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 뭉크를 위한 미술관이 이곳에서 처음 문을 연 것은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슬로 외곽 퇴옌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뭉크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인 1944년 오슬로시에 자신의 모든 작품을 남기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지어진 미술관이다.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꼽히는 뭉크지만, 미술관 추진 당시만 해도 ‘이렇게 많은 돈을 한 작가에게 투입하는 게 맞냐’ 등 정치적으로 상당한 논쟁을 겪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뭉크 탄생 100주년이었던 지난 1963년, 퇴옌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개관했다.

공들여 만든 미술관이었지만, 불편한 입지는 물론 거장을 품기에는 아담한 규모 등을 이유로 채 20년도 되지 않아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는 지적과 마주해야 했다.

오슬로시는 미술관을 도심권으로 확장 이전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안을 검토한 끝에 기존의 퇴옌 건물을 확장·개조해 1993년 새롭게 선보였다.

하지만 2004년 뭉크의 대표작 ‘절규’와 ‘마돈나’를 무장 강도에게 도난당했다가 되찾아 오는 사건 등을 겪으면서 퇴옌 건물을 떠나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금 불붙었다.

결국 오슬로시의회가 이전·건립을 결의하면서 뭉크의 명작들은 마침내 그 위상에 걸맞은 ‘마땅히 받아야 할 집’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게 됐다.

 
뭉크미술관을 찾은 관객들이 미국 초상화가 앨리스 닐 기획전 ‘모든 인간은 하나의 우주’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집’으로

새롭게 문을 연 미술관은 총 13층 중 7층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실이 들어서지 않은 층에도 카페, 기념품점, 레스토랑, 스카이바 등이 들어서면서 굳이 작품을 감상하지 않아도 쉽게 발걸음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스카이바가 자리 잡은 13층에는 탁 트인 통유리 넘어 오슬로 피오르드 조망을 즐기려는 이들이 속속 들어섰고, 중간층에서는 복도 의자에 작정하고 앉아 인근 풍경을 수첩에 스케치하는 방문객이 눈에 띄었다.

1층 로비에서 2층 사무실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원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유유히 간식 도시락을 까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물론 미술관 이전 후 가장 큰 변화는 전시의 폭이 확장됐다는 점이다.

마렌 린데베르그 뭉크미술관 홍보 담당은 “과거와 비교하면 전시 공간이 5배로 넓어졌다”며 “이전에는 전시 공간이 1곳뿐이었다. 이 때문에 선보였던 전시를 끝낸 뒤 다음 전시를 개막하기까지 준비하는 기간에는 작품들을 선보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시 공간 부족에 시달렸던 당시에는 미술관에 걸린 뭉크 작품의 비중이 적어 방문객에게 볼멘소리를 듣거나, 뭉크의 다른 작품을 전시하느라 대표작 ‘절규’를 선보이지 못하는 등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마주해야 했다.

넉넉한 규모를 자랑하는 새로운 ‘집’에서는 이러한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모든 방문객이 보고 싶어 할 대표작, ‘절규’는 아예 ‘절규의 방’을 만들어 놓고 상설로 선보인다. 뭉크가 작품을 한 점만 제작하지 않고 색감 등 형태를 달리해 가며 여러 점을 제작했던 만큼, 3개의 벽면에 서로 다른 ‘절규’를 각 1점씩 걸어뒀다.

독특한 점은 3점의 ‘절규’가 걸려 있지만 한 번에 한 점만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새까만 벽에 미닫이 창문 형태의 덮개를 달고, 30분마다 각 작품이 돌아가며 공개되도록 했다. 1893년 크레용으로 작업해 노란빛이 강한 ‘절규’가 공개되는 동안, 1910년 템페라와 유화 기법으로 제작한 붉은 빛 가득 ‘절규’와 1895년 흑백 석판화로 만들어진 ‘절규’는 새카만 덮개로 가려두는 식이다. 작품 보존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만, 다음번 ‘절규’가 공개될 때까지 어쩌면 스쳐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를 다른 주옥같은 작품들을 감상하는 등 미술관 체류 시간을 늘리는 효과로도 이어졌다.

 
뭉크미술관 전경
◇세계 유수 ‘작가 미술관’ 뭉치다

지난 2014년 뭉크미술관에서는 약칭 IAAM로 불리는 미술 관련 단체 하나가 발족했다. 세계 작가 미술관 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ist’s Museums)로, 1919년 프랑스 파리에 만들어진 로댕 미술관부터 2011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세워진 클리포드 스틸 미술관까지 세계 미술관 20여 곳의 연대다. 뭉크미술관을 비롯해 피카소, 마티스, 고흐, 샤갈, 달리, 앤디 워홀 등 미술사적 가치와 명성이 확립된 근현대 주요 작가를 조명하는 미술관들이 모였다.

지금까지 10년간 모두 7차례 모여 회의를 개최했는데, 첫 회의를 비롯해 모두 2차례의 회의가 뭉크미술관에서 열렸다. 뭉크미술관은 관장이 IAAM 운영위원회로 활동하는 등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작가 미술관들이 이렇게 협회를 구성하고 단체 행보에 나선 것은 작가미술관 고유의 공동 의제를 논의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뭉크미술관은 IAAM 소속 미술관들에서 관찰되는 몇 가지 경향성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다. 먼저 회화 보존가와 종이류 보존가, 미술품 보존 과학자로 구성된 보존 부서를 두고 뭉크의 작품을 보존 처리하는 한편 보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지속가능한 작가미술관을 위한 핵심, 작가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드로잉 소장품을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검토 작품을 모은 도록)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며 그 과정·계획을 누리집에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술관의 역사성과 명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대표적 종합미술관으로서의 확장성과 현대성을 지향하고 새로운 비전 수립에 나선 점도 눈에 띈다. 뭉크미술관은 뭉크와 노르웨이의 유산을 수집하는 데서 나아가 국제적 문화유산의 수집과 전시로 확장하고 다른 미술관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계획이다.

글·사진=백지영기자

※참고문헌=양지연(2022) ‘공공의 기관으로서의 작가미술관과 기념관:뮤지엄화의 조건’.

 
뭉크미술관을 찾은 관객들이 미국 초상화가 앨리스 닐 기획전 ‘모든 인간은 하나의 우주’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트리네 오테 박 닐슨 뭉크미술관 큐레이터.
“뭉크에만 얽매이지 않는 ‘뭉크미술관’”
트리네 오테 박 닐슨 뭉크미술관 큐레이터


“뭉크미술관은 뭉크와 전혀 상관없는 전시도 자유롭게 선보입니다. 뭉크에게 얽매이기 보다는 ‘좋은 전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트리네 오테 박 닐슨 뭉크미술관 큐레이터는 미술관이 뭉크 혹은 뭉크와 관계있는 작가의 작품만 선보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뭉크미술관은 매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뭉크 작품들을 선보이는 상설전 4종과 함께 기획전 4~5편 정도를 새롭게 준비해 각 3개월 정도씩 선보인다. 올해는 평소보다 많은 6개 기획전을 준비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트리네 큐레이터의 말처럼 기획전 주제나 참여 작가를 뭉크에게만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4일 기준 진행 중인 뭉크미술관의 전시는 상설전 4편과 기획전 3편 등 모두 7편. 기획전 3편 중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와 1863년 태어난 뭉크의 유사점에 조명하는 2인전 ‘뭉크와 고야, 현대의 예언’에서는 뭉크의 작품을 만날 수 있지만, 다른 기획전 2편에서는 만날 수 없다, 미국 초상화가 앨리스 닐(1900~1984) 기획전 ‘모든 사람은 새로운 우주’과 오슬로에서 활동하는 신진 예술가 대상 대규모 공모 ‘솔로 오슬로’ 당선 작가 아드미르 바틀락(1982~) 전시 등 다른 예술가 1명을 조명하는 전시기 때문이다.

“뭉크는 직설적인 표현주의 작가였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노르웨이식 표현으로 ‘연결점’을 뜻하는 ‘붉은 실’을 뭉크에게 드리운 전시가 있을 순 있겠네요.”

트리네 큐레이터는 뭉크미술관이 가장 최근 개막한 전시 ‘뭉크와 고야, 현대의 예언’ 전을 준비했다. 2017년부터 연구한 뭉크와 고야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꾸린 리서치(연구) 전시로, 뭉크를 통해 고야를 들여다볼 수 있다.

트리네 큐레이터는 “뭉크 없이 고야만으로도 전시를 개최할 수 있지만, 두 예술가를 함께 살펴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에 2인전으로 준비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백지영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한 관객이 헤드셋을 착용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이 마련한 미국 초상화가 앨리스 닐 기획전 ‘모든 인간은 하나의 우주’ 전시 공간에 걸린 앨리스닐 작품 ‘스페인 가족’.
뭉크미술관이 마련한 미국 초상화가 앨리스 닐 기획전 ‘모든 인간은 하나의 우주’ 전시 공간에 걸린 앨리스닐 작품 ‘가족’.
뭉크미술관 7층 전시실 복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설명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뭉크 판화 간접 체험에 나선 방문객들.
뭉크 판화 간접 체험에 나선 방문객들.
뭉크의 초대형 작품 ‘태양’, ‘과학자들’ 등이 전시된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실 가운데 놓인 동그란 체험 기구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슬로 건물들을 쉽게 조망할 수 있는 뭉크미술관 한 켠에 앉아 바깥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는 한 방문객.
‘절규의 방’을 찾은 관람객들이 뭉크 대표작 ‘절규’를 감상하고 있다.
뭉크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절규의 방’을 찾은 관람객들이 뭉크 대표작 ‘절규’를 감상하고 있다.
뭉크미술관 1층의 카페 입간판. ‘절규(scream)’를 연상케하는 그림과 메뉴명이 눈에 띈다.
뭉크미술관 전경.
뭉크미술관 1층 로비. 새롭게 입장하는 이들과 전시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관람객, 기념품점을 살펴보는 이들로 늘 분주하다.
뭉크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계단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어린이들. 전시를 관람하지 않는 시민들도 편하게 들러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뭉크미술관 기념품점.
뭉크 대표작 ‘뱀파이어’.
뭉크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뭉크 대표작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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