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가야 지배층의 안식처 '창녕 교동 송현동 고분군'
비화가야 지배층의 안식처 '창녕 교동 송현동 고분군'
  • 양철우
  • 승인 2023.11.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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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동쪽 위치, 신라와 자율교섭 펼쳐
대형 고분 주위로 위성고분 계층 배치 독특
국내 최초 복원된 순장소녀 ‘송현이’도 화제
창녕은 삼국유사의 비화(非火), 진흥왕척경비의 비자벌(比子伐), 삼국사기의 비사벌(比斯伐), 비자화(比自火)라고 불린 고대 국가가 있었던 지역이다. 이 나라명은 순수 우리말로 해석하면 빛의 벌판, 빛의 나라로 불린다.

비화가야의 대표유적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군이다. 가야고분군 중 유일하게 낙동강의 동쪽에 위치한 지리적 요소로 인해 신라와 자율적으로 교섭했던 가야 정치체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현재까지 조사를 통해 조성된 고분군의 면적은 53만1442㎡이며 봉분은 115기이다. 봉분이 축조되지 않은 고분의 기수를 포함하면 수백 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대형 봉토분을 중심으로 주변에 작은 봉토분들이 위치한다. 특히 교동 7호분 주위에는 중소형 고분이 위성처럼 둘러싸고 있어, 대형 고분과 중소형 고분의 배치방식을 통해 가야 지배층의 계층분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배치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다. 비화가야인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무덤을 축조해가고 독자적인 경관을 형성했다. 화왕산 자락에서 뻗어 나온 빛이 비치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경관은 그 아름다움이 가야고분군 중 으뜸이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전경 /사진=창녕군

◇일제강점기 가장 많은 도굴 피해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임나일본부설’ 실체 규명을 위해 가장 많은 도굴을 당한 가야고분군이다. 당시 출토된 유물의 양은 마차 20대분, 화차 두 량분으로 많은 유물이 일본으로 반출됐다.

특히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뛰어난 유물은 일제강점기 유물수집가들의 표적이 됐고, 도굴꾼들로 인해 수많은 유물이 도굴돼 일본으로 반출됐다. ‘오구라컬렉션’이라 불리는 오구라의 수집 유물 중 많은 유물이 창녕 출토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국립도쿄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오구라컬렉션 중 창녕 출토 가야유물 9점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높다.

일제강점기 이후 가야고분군 중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가장 많은 조사가 이뤄졌다. 발굴조사는 고분군의 보존을 위한 학술조사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협업해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5세기 중엽에 축조가 시작돼 6세기 중엽 신라로 편입되기까지 약 100년간 지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비화가야 지배 세력의 성장과 쇠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유적임이 증명됐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 형태는 한쪽 끝에 입구부가 결합해 있는 독특한 형식의 가야식 석곽묘(돌덧널무덤)이다. 입구부는 장례 시 주인공의 관과 부장 유물(껴묻거리)을 이동하기 위한 시설로서 교동 3호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 외에도 표형분(표주박모양무덤),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 판석조 석곽묘(판석으로 만든 돌덧널무덤)도 확인돼 신라와 가까운 지역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창녕식 토기는 비화가야만의 독특한 지역색을 보여 독자적으로 토기 생산체계를 갖춘 것으로 보고 있다. 금동관, 금으로 만든 굵은 고리의 귀걸이, 허리띠 장식, 말안장 등 금으로 만든 공예품은 가야연맹 속 독자적으로 신라와 교류했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또 녹나무로 만들어진 관과 명문이 새겨진 큰 칼, 철판으로 만든 갑옷은 낙동강을 통해 일본열도와의 교류에도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출토품이다.

◇최초의 가야사람 복원프로젝트

2007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송현동 고분군 15분에서는 주인공과 함께 순장자 인골 4구가 확인됐다. 4구의 순장 인골 중 가장 온전한 인골 1구를 국내 최초로 복원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복원프로젝트에는 고고학뿐만 아니라 법의학, 해부학, 유전학, 화학, 물리학 등 국내 인문학 및 자연과학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그 결과 16세의 순장 소녀 ‘송현이’ 복원에 성공했다.

송현이는 정강이와 종아리뼈에서 무릎을 많이 사용한 흔적이 나타나 15호분 주인공의 시녀였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모시던 권력자가 세상을 떠나자 강제로 죽임을 당한 뒤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된 송현이. 사진=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출토 장신구일괄. 사진=창녕군
◇도굴되지 않은 완전한 고분 조사 교동 63호분

201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도굴이 전혀 되지 않은 교동 63호분이 조사됐다. 무덤의 주인공은 장신구를 착장한 채로 온전히 발견됐다. 머리 부분에서는 금동관, 양쪽 귀에서는 금으로 만든 굵은 고리귀걸이가 확인됐다. 목과 가슴에는 유리구슬로 만든 목걸이, 허리에는 은허리띠가 손부분에는 은반지가 있었다.

63호분의 안팎으로 순장자가 5명 묻힌 흔적들도 확인됐다. 63호분의 주인공은 비화가야의 최고 지배계급이고, 착장한 장신구들로 보아 여성으로 추정했다.

특히 63호분의 입구 쪽에는 매우 특별한 소형 덧널이 확인됐는데, 덧널 안에 3마리의 개 뼈가 있었다. 3마리의 개를 위해 따로 덧널을 만든 경우는 처음 확인된 경우이다. 덧널의 위치와 뼈가 놓인 상태를 보아 무령왕릉 널길에 서 있던 진묘수(무덤을 지키는 짐승)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유산 등재 따른 활용사업 추진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관리는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바탕이 됐으며, 세계유산으로서 고분군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관광객 수요 증대를 위해 다양한 활용사업 공모를 준비 중이다. 고분군 야간경관 조성, 세계유산 방문자센터 건립 등 기반 시설 확충도 계획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를 위해 비화가야 학술 심포지엄, 역사문화권 마스터플랜 수립 및 중요유적 발굴조사 등도 진행할 계획이다.

성낙인 창녕군수는 “잃어버린 가야의 역사가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로 인해 다시 빛을 보게 됐다”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을 비롯한 가야고분군의 세계적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양철우기자 myang@gnnews.co.kr
송현동 7호분 출토 금동투조안교 사진=창녕군 
창녕 출토 금동관모(오구라 컬렉션) 사진=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전경 사진=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전경 사진=창녕군 
송현이 인골사진 사진=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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