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전보(電報)
[경일춘추]전보(電報)
  • 경남일보
  • 승인 2023.11.1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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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내달 15일부터 전보(電報) 서비스가 중단된다고 한다. 1885년 한성정보총국에서 서울-인천 간 첫 전신업무를 시작한 지 138년 만이다. 전보 혹은 전신(電信)과 관계된 이야기도 이제는 문학작품에서나 찾을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늦은 감도 있다. 스마트폰 메신저가 얼마나 발달했는데 여태 전보가 남아있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필자는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무선호출기 삐삐가 사라졌을 때도 그랬다. 1010235(열렬히사모), 8282(빨리빨리)처럼 현란했던 숫자 메시지도 그립고, 풋풋했던 청춘, 그 시절의 열망과 아픔까지 모조리 그립기만 하다. 20년 전 만우절 저녁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난 홍콩배우 장국영의 흑백사진처럼, 문득 사라지는 모든 것은 지나간 세기의 상징 같아 아련하고 아쉽다.

전화가 없던 시절 전보는 편지보다 훨씬 빠른 통신수단이었다. 발신자가 메시지를 요청하면, 전신국에서 모스 부호로 타전하고, 수신지역에서 해독해 배달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최소 3일씩 걸리던 손편지에 비해 당일 특급배송 격이었다.

문자나 숫자를 전기신호로 전파하는 획기적인 방식이라 전에 없던 설비투자도 필요했다. ‘전봇대’, ‘전신주(電信柱)’도 이 때문에 생긴 말이다. 흔히 전주(電柱)와 혼동해 쓰고 있으나, 원래 전봇대는 전보용 통신선을 가설하기 위해 세운 기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또 글자 수에 따라 가격을 매겼으므로 ‘조부위독’, ‘기쾌유’처럼 최대한 짧게 써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모친상경’을 ‘모친상’으로 잘못 타전해 난리가 났다는 둥 에피소드도 많았다. 비싸고 급한 만큼 전보 내용은 일반 편지보다 훨씬 절박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해방 직전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하다 징용을 피해 귀국한 화가 이중섭이 연인 마사코에게 편지와 엽서를 융단폭격처럼 쏟아 보냈던 일은 유명하다. 그리움에 지친 그는 결혼을 서두르자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고, 마사코는 그 즉시 짐을 싸 미군의 폭격을 뚫고 조선행을 감행했다. 한 장의 전보가 곱게 자란 일본인 여성에게 죽음을 무릅쓸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요즘은 편지도 이메일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단문 메시지와 이모티콘이 대세인 시대. 비록 전보의 소용은 사라졌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소통의 가치만은 영영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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