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인요한이 모는 국민의힘 ‘태양 마차’
[경일시론]인요한이 모는 국민의힘 ‘태양 마차’
  • 경남일보
  • 승인 2023.11.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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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논설위원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은 아버지를 졸라 태양 마차를 한 번 몰게 된다. 어린 자식을 거두지 않았던 죄책감에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는 부친에게 태양 마차를 하루 동안 몰고 싶다고 했던 거다. 헬리오스는 이 엄청난 일을 결국 허락하면서 일렀다. ‘길의 첫 부분은 아침이라 가팔라서 말들도 힘들어 하지만 높이 오르면 거칠어진다. 바다와 대지를 내려다 보면 겁이 나고 가슴이 떨릴 거다. 채찍은 아끼고 고삐는 단단히 틀어쥐어라.’

그 염려와 당부를 뒤로하고 파에톤이 마차에 오르자 날개 달린 네 마리 말은 불을 뿜듯한 울음소리로 허공을 차올랐다. 마차가 솟구쳐오를 때의 황홀감도 잠시, 곧 말들이 무섭도록 내달았다. 차갑게 여겼던 별들을 스칠 땐 뜨거워 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었다. 곧 겁에 질려 고삐를 놓아버렸고 말들은 무턱대고 내달았다. 하늘 높이 치닫는가 하면 대지 가까이 곧두박질치기도 했다. 대지의 물은 모조리 말라버렸고 곡식과 나무는 재로 변했다. 불바다가 된 대지 곳곳에 사막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새까매졌다. 필경 제우스만이 해결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당 혁신 작업 중인 국민의힘을 바라보다가 파에톤의 태양 마차가 떠오른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3일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첫 일성으로 ‘와이프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야 한다’고 한 인 위원장이다. 그는 1호 혁신안으로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전 최고위원 등에 대한 당 징계 해제를 요구했다. 통합 첫걸음이라 설명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은 비웃음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1호 혁신안은 당 지도부가 의결로 수용했다는 의미나마 갖는다.

2호 혁신안은 의원정수 감축, 현역의원 20% 공천 배제 등을 담았다. 여기에 당에선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뒷받침하는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 ‘당 중진들이 수도권에 출마했으면 한다’, ‘대통령과 가까운 분들이 험지에 나가거나 출마를 포기하라’는 말이 인 위원장 입에서 나왔지만 메아리가 없다. 인 위원장 발언 직후 핵심 대상인 장제원 의원은 이를 일축하듯 자신의 외곽 조직 산악회 모임을 대규모로 가졌다.

혁신위는 잇달아 혁신안 3호로 청년에게 공천 인센티브를 파격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비례대표 당선 가능 순번에 청년 50%를 넣자는 안도 내놨다. 인 위원장은 17일 김기현 당 대표와 회동한 직후 지역구 전략 공천을 원천 배제하라는 4호 혁신안을 발표했다. 모든 공천은 상향식으로 하라는 요구였다. 대통령실 인사도 전략 공천은 안 된다는 소리였다. 이같은 2~4호 혁신안, 중진과 지도부 및 대통령 측근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제안에 당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불만은 결국 터졌다. 주호영 의원은 험지 출마 요구를 공개 거부했다.

고삐를 쥔 인요한 위원장이 앞으로 어떤 혁신안을 더 쏟아낼지 알 수 없다. 또 그것이 국민적 공감을 얻고 당 안팎의 지지를 받을지도 미지수다. 다만 예상되는 것은 지금까지 1~4호 안의 반응에서 보았듯 혁신안은 당이나 당사자 모두에게 난제일 것이다. 파에톤이 태양 마차를 모는 것만큼이나 힘겨운 일을 인요한은 잘 수행해낼 것인가. 이 시점에서 인요한의 결말이 신화 속 파에톤의 운명과 같으리라 섣불리 예단해선 안 된다. 어려운 길에 말 고삐를 잡은 국민의힘 태양 마차 운행을 잘 마치게 될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삐딱하지 않은 눈길로 그 과정을 바라볼 일이다.

사족이지만, 서툰 파에톤이 마차를 모는 동안 온통 불바다가 된 대지의 불을 끄기 위해 제우스는 벼락을 사용했다. 파에톤의 산화(散華)로 사태가 수습된 셈이다. ‘변신 이야기’에서 오비디우스는 파에톤의 비문(碑文)을 이렇게 썼다. ‘비록 아버지의 마차를 제어하지는 못 했지만 큰일에 도전하다 여기 떨어졌도다!’ 높은 영역을 열어젖히고자 했던 파에톤의 헌걸찬 용기에 방점을 찍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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