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3)네덜란드 헤이그 에셔미술관
[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3)네덜란드 헤이그 에셔미술관
  • 백지영
  • 승인 2023.11.21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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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라는 브랜드에서 작가 미술관 탄생
독창적 예술세계, 영감받은 작가 작품까지 공개
세대불문 관람객 행렬 ‘에셔의 공간’ 빠져들어
작가·작품의 힘에서 작가 미술관 원동력 발견
네덜란드 정부와 왕궁, 수많은 국제기구가 위치해 나라의 실질적 수도로 꼽히는 도시 헤이그. 한국인에게는 고종의 밀지를 받은 특사단이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기 위해 방문했던 만국평화회의 개최 도시로 뇌리에 남아있는 도시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비롯해 렘브란트·루벤스 등 네덜란드 미술 황금기를 이끈 화가들의 작품이 가득한 마우리츠호이스, 추상화 선구자 몬드리안 등의 작품으로 무장한 헤이그시립미술관 같은 쟁쟁한 미술관이 포진한 도시기도 하다.

미술과 친숙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음 직한 네덜란드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헤이그의 종합 미술관들 사이, 특유의 매력으로 그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작가 미술관’이 있다.

 
‘에셔 인 헷 팔레이스(Escher IN HET PALEIS)’ 에셔 궁전이라 불리는 에셔미술관.
네덜란드어로 ‘에셔 인 헷 팔레이스(Escher IN HET PALEIS)’, 한국어로는 ‘에셔 궁전’으로 번역돼 명칭만으로는 미술관임을 짐작하기 쉽지 않은 곳, 에셔미술관이다.

기하학적 원리와 수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착시 효과를 불러오는 초현실주의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에셔는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네덜란드 판화가다. 렘브란트·고흐·베르베르·몬드리안과 함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5명의 화가로 불린다.

치밀한 설계를 통해 종이라는 2차원적 소재가 3차원적 공간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착시를 머금은 작품들로 유명하다. 영화 ‘해리포터’나 ‘인셉션’에 그의 작품 세계가 인용되는 등 현대 사회에도 여전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왕실 겨울궁전, 초현실 품은 작가 공간으로

에셔미술관은 작가에 대한 뜨거운 인기가 출발점이 된 미술관이다. 작가의 유언이나 지자체와의 협약 혹은 정치 공학적 계산이 아닌 작품의 힘이 개관을 이끌었다.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그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네덜란드 왕실의 겨울 궁전으로 사용됐던 장소다. 1989년 헤이그시에 문화 관련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저렴하게 매각됐다. 이후 1992년부터 10년간 헤이그시립미술관의 별관으로 사용됐다.

이 기간의 말미,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에서는 에셔를 조명하는 전시가 개최됐다. 전시가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에셔만을 조명하는 미술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 결과 2002년 에셔만의 작품을 다루는 ‘작가 미술관’이 탄생했다. 에셔미술관재단(Stichting Escher IN HET PALEIS)이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헤이그시립미술관이 소장 중인 에셔의 작품들을 이곳 헤이그시 소유 건물에서 선보이는 구조다.

궁전으로 사용됐던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화려한 금박 장식으로 무장한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검은색이 주를 이룬 에셔의 초현실주의적 판화 사이 기묘한 대비가 인상적인 공간이다.

에셔의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 조각가 한스 반 벤템이 제작한 해골·거미·우산 등 독특한 주제의 샹들리에와 미국의 미니멀 아티스트 도널드 저드가 기하학적 원리를 적용해 설계한 마루 장식 등도 공간에 매력을 더한다.

 
전시 작품을 사진으로 남기는 방문객,
◇10년 새 방문객 2배…자체 수익 비중 높아

네덜란드의 미술관은 대부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그 운영을 꾸려 나간다. 에셔미술관 역시 지원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비중은 다른 미술관들과 사뭇 다르다.

마르셀 웨스터디프 에셔미술관 총괄 책임자는 “대다수 네덜란드 미술관은 정부 보조금 80%, 자체 수익 20%로 운영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20%만 보조를 받고, 80%는 자체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술관을 잘 꾸며두면 많은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고, 결국 수익으로도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에셔미술관 연간 방문객은 10년 전 7만 4000명에서 올해는 19만 명으로 2.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미술관을 방문한 날 역시 건물 입구부터 에셔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네덜란드 현지를 비롯해 유럽 내 수많은 미술관을 섭렵한 통역사도 그 인기에 사뭇 놀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에셔 작품 ‘뫼비우스 띠 II’.
에셔미술관에 전시 중인 직품들.
◇관람객 인기 속 더 넓은 곳 이사 꿈꾸다

웨스터디프 총괄 책임자는 이렇게 미술관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에셔이기 때문”이라는 명료한 답을 내놨다.

“에셔의 작품은 각 세대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신기해하며 감상한다면, 성인이 되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폭이 깊어지면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죠. 노년에서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고요. 그의 섬세한 작품들이 목판화로 제작된 점 역시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이유입니다.”

 
어린 소년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이 에셔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신체 크기가 다르게 앵글에 담기도록 설계된 체험전시 공간.

에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리구슬을 든 손’ 곁에서 작품 속 화면을 따라 연출해 보는 청년 세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신체 크기가 다르게 앵글에 담기도록 설계된 체험전시 공간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보는 노부부, 7m 길이의 대형 작품이 신기한 듯 종이에 연필로 따라 그려보다 이내 아빠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사진으로 찍어보는 꼬마 소년….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영민함, 섬세한 기술에서 엿볼 수 있는 장인 정신에 매료됐기 때문일까. 방문객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작품 감상에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에셔미술관은 더 많은 작품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둥지를 옮길 것을 준비하고 있다.

웨스터디프 총괄 책임자는 “지금은 공간에 비해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학생들의 방문이 잦은데 아무래도 공간적 제약이 느껴진다”며 “인근의 전 미국대사관 건물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공간이 5배 넓어져 더 풍성한 전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전시 작품을 사진으로 남기는 방문객,
마르셀 웨스터디프 에셔미술관 총괄 책임자

“좋은 경험을 안기는 것이 미술관이 목표”
마르셀 웨스터디프 에셔미술관 총괄 책임자


“물건은 구매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관은 경험을 주는 곳이잖아요. 한 번 나쁜 경험을 하게 되면 다시 좋은 경험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에셔미술관을 이끄는 마르셀 웨스터디프 총괄 책임자의 지론이다.

웨스터디프 총괄 책임자는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할 수 있도록, 전시와 교육은 물론 인적 구성까지 다방면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술관을 이끄는 자신은 물론 65세 이상 고령자가 배치되는 단기 인력 자리까지, 미술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로 조직을 구성해 그 애정이 관람객에게도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기하학과 수학적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는 작품 특징을 활용해,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구현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웨스터디프 총괄 책임자는 “연극 연계 체험 교육을 통해 관람객이 에셔의 작품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등 미술관 방문이 흥미로운 경험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학생들에 대한 교육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에셔미술관 내 전시실. 액자로 마주하는 에셔의 작품은 물론 독특한 샹들리에, 마루 장식 등 공간 전체가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에셔의 작품을 감상 중인 방문객.
만화적으로 묘사된 조형물이 눈길을 끄는 1층 전시 공간.
계단에 길게 드리워진 샹들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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