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사이다만 좋아하면
[경일춘추]사이다만 좋아하면
  • 경남일보
  • 승인 2023.11.2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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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김종윤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박사 과정 때 독자가 지닌 신념이 글을 읽고 해석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썼다. 이스라엘 서안 지구(West Bank)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에 관한 여러 글을 세 집단의 사람들에게 읽게 했다. 참여자들은 친이스라엘 관점을 지닌 학생, 친팔레스타인 관점을 지닌 학생, 중립적인 대학생들이었다. 팔레스타인 관점을 지닌 학생들은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글에 동의하고 이스라엘의 입장에 선 글은 비판적으로 읽었다. 친이스라엘 관점을 지닌 학생들은 그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다양한 관점의 글을 읽고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보다는, 기존 갖고 있던 자신의 신념을 더욱 강화했다는 점이다. 이를 심리학 분야에서는 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에 의한 신념의 양극화(belief polarization)라고 한다. 사람들은 보는 것을 믿기 보다는, 믿는 것을 본다.

신념에 의한 양극화 현상은 인터넷 공간에서 더욱 확대된다. 인터넷 정보 제공자들은 상업적 이익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정보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만든다. 가방을 검색하면 가방 광고가 뜨고,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를 보면 유사한 취향의 정보가 웹사이트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엘리 페이저(Eli Pariser)가 쓴 책의 제목처럼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불린다. 소셜 미디어 정보 제공자가 선별하는 정보의 거품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은유로 나타낸 것이다.

자기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보게 되면 결국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점차 극단적이 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에서는 더욱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정보가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관용적 자세나 타협의 모습은 줄어들고 극단적인 목소리들만이 크게 들리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연유가 아닐까.

한때 우리 사회에서 ‘사이다’와 ‘고구마’란 비유가 유행한 적이 있다. 고구마는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한 상황이나 사람을, 사이다는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문제가 풀리는 상황이나 사람을 가리킨다. 인터넷 공간에서 내 신념에 맞는 소위 ‘사이다’ 정보만 찾게 되면, 그는 다른 이의 의견이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어도 귀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문제들은 그렇게 사이다 같은 짜릿함이나 시원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적당히 마셔야지, 사이다만 찾으면 건강도 해치고 물이 가진 고유의 담백함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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