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엘리베이터
[경일춘추]엘리베이터
  • 경남일보
  • 승인 2023.11.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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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시인·진주문인협회 감사
이미화 시인·진주문인협회 감사


우리는 왜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만나면 어색해 할까. 겨우 눈인사만 하고는 낯선 사람으로 돌아갈까. 움직이는 숫자판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앞 사람의 뒤통수를 째려보다가 그래도 엘리베이터 안 공기의 시계는 차갑고 더디게 간다.

어떤 날은 모두가 휴대폰에 집중하기도 하는 좀체 기계보다 사람이 친해지지 않는 공간이다. 이웃이 앞모습보다 등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편견일까. 아이들에게 예쁘다는 말도 해 주기 조심스럽다.

몇 년 전 이사했을 때의 일이다. 큰딸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아차를 끌고 타는 젊은 이웃을 만났다. 눈을 맞추고 방긋방긋 웃는 애기를 보니 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나도 모르게 “어머 아들이 참 잘생겼네요. 나중에 큰 인물이 되겠어요” 덕담을 해주었다. 순간 내 팔짱을 끼고 있던 딸의 팔꿈치가 옆구리를 툭 쳤다. 때마침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내리는 젊은 엄마의 입 꼬리에서 말벌 한 마리가 팽 날아가는 줄 알았다. “딸인데요.” 한방 야무지게 쏘인 내게 딸은 팔짱을 당기며 요즘 엄마들 앞에선 애기 성별에 관한 그 어떤 말도 금기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돌 무렵까지 외출할 때마다 머리띠를 하고 다닌 손녀 생각을 했다. 머리띠는 머리카락이 덜 자란 애기들에게 딸과 아들을 구분하는 기호 같은 거라고 했는데 왜 아이에게 머리띠를 안 해줬지. 씁쓸했다.

오십 후반에 드니 인연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같은 아파트, 같은 통로,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분명 전생에 인연으로 엮여진 사람들일 것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을 참 좋아한다.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특히 좋아하는 문장이다. 불교에서도 인드라망이 있어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드라망이란 이 세상이 넓고 큰 그물인데 그 그물코마다 달린 구슬이 서로를 비추고 있어 서로 이웃하고 의지하면서 존재하는 거라고 했다. 종종 얄팍한 내 인연설이 금이 가는 순간을 맞으면서도 나이가 드니 말이 많아진다.

내 아이들이 애기였을 때는 아파트 같은 통로마다 반상회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씩 집집마다 돌아가며 차와 과일을 준비하고 이웃들을 초대했다. 물론 아이들도 누구네 아인지 얼굴을 알아 서로 지켜주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언니 동생, 이모 삼촌이 되고 일가처럼 허물이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청하기도 하면서 이웃사촌의 정을 쌓아갔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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