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4)네덜란드 하를럼 프란스 할스 미술관
[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4)네덜란드 하를럼 프란스 할스 미술관
  • 백지영
  • 승인 2023.11.23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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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를럼시가 400 여 년 지켜온 프란스 할스 미술관
작가 미술관에서 '사람' 중심 종합 미술관으로 성장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서쪽으로 20㎞, 기차나 자동차로 20분이면 손쉽게 갈 수 있는 근교 도시 하를럼(Haarlem). 암스테르담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도시로 중세의 고풍스러움이 여전히 지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16~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두각을 드러낸 지역으로, ‘회화의 도시’·‘화가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등 시각 예술 분야에서 특히 명성을 떨쳤다.

수많은 화가를 배출한 하를럼이지만 이곳에서 활동한 작가를 거론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있다. 혁신적인 화풍과 대담한 붓놀림으로 초상화의 새 길을 개척한 인물, 프란스 할스(1582~1666)다.

 
얀 반 스코렐의 단체 초상화 작품.
프란스 할스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앤트워프 지역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하를럼으로 이주한 뒤 평생을 이 도시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후원을 위해 거처를 옮겨가며 작업을 했던 동시대 다른 화가들과 달리, 암스테르담 등 타지역으로 옮겨 작품 활동하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의 그림을 원한다면 직접 하를럼에 찾아오라고 공언했다.

1인·2인 초상화와 집단 초상화를 주로 그린 할스는 일생동안 귀족과 부르주아, 길드, 각종 협회, 민병대 등 다양한 이들의 의뢰로 붓을 들었지만 풍족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의 작품 역시 사후 200년 가까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19세기 중반 상황은 뒤집어진다. 그의 작품에 매료된 프랑스 언론인, 테오필 토레가 1868년 당대 권위 있는 미술 잡지에 그의 작품을 극찬한 게 계기가 됐다. 국제적인 재평가와 함께 인기가 급부상했다.

 
프란스 할스의 민병대 단체 초상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전시실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프란스 할스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관계도를 관람객들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노란 동그라미가 프란스 할스.
◇종교 개혁이 불러온 나비 효과

프란스 할스 미술관의 뿌리는 작가가 명성을 얻기 전,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을 꽃피웠던 하를럼시는 곳곳에 수준 높은 미술 작품이 만발해 있었다. 하지만 종교 개혁으로 개신교가 들어오면서 종교 관련 수많은 작품이 덧칠되거나 훼손됐다. 다행히 하를럼 가톨릭(구교) 성당에 있던 작품들은 성당 폐쇄를 계기로 하를럼시가 예술 작품 압류에 나서면서, 대중들로부터 파괴되는 화를 면했다.

하를럼시는 이렇게 소장하게 된 주옥같은 작품들을 그냥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작품을 시청 단지에 전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종의 준 공공미술관 역할을 한 게 벌써 400년도 전 일이다. 프란스 할스 등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소장품을 확대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1862년, 프란스 할스 미술관의 전신인 하를럼시립미술관을 개관한다.

 
속담으로 가득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작품 아래로 각 속담을 뜻하는 장면 해설이 설치돼 있다.
하를럼시립미술관은 개관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당대 화가들의 순례지로 급부상한다. 테오필 토레의 기사가 히트를 치면서 프랑스는 물론 독일·영국·미국 작가들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순례지, 하를럼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마네·모네·쿠르베 등이 이곳을 찾아 할스의 작품을 연구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프란스 할스의 작품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지속적인 작품 구매와 기부로 방대한 소장품을 갖게 된 미술관은 더 넓은 공간이 필요성을 느낀다. 1913년 새로운 장소로 이전해 개관하면서 ‘프란스 할스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건다. 할스를 주축으로 수많은 네덜란드 황금시대 작가의 회화를 시작으로 은·유리·가구까지 폭넓은 작품을 자랑했지만, 단 한 명의 작가의 이름을 미술관에 붙였다. 도시를, 그리고 미술관을 가장 빛내주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ㅁ 형태를 띈 미술관 한가운데 위치한 정원.
프란스 할스 미술관 HAL관. 파란 입간판에 방문 당시 진행 중이던 네덜란드 시각 예술가 핑크 드 티에리의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지향점은 결국 결국은 사람 중심

현재 프란스 할스 미술관은 하를럼 구시가지 내 도보 7분 거리의 건물 2곳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HOF(호프)라 불렸던 본관 격 건물은 16세기 작품부터 현대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다룬다. 빈민을 위한 양로원으로 쓰였던 유서 깊은 장소로, 생전 할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할스가 마지막으로 의뢰받은 대작이 바로 이 양로원 이사회 단체 초상화로, 미술관의 주요 작품 중 하나다.

HAL(할)이라 불리는 별관 격 건물에서는 근현대 작품부터 동시대 작품의 기획전이 주로 열린다.

 
할스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영상물을 감상 중인 관람객.
자화상을 그릴 수 있도록 마련된 체험 공간 곁에 남겨진 관람객들의 자화상.
사실 프란스 할스 미술관은 여타 ‘작가 미술관’을 떠올리며 찾았다간 생각보다 적은 할스의 작품 수에 실망할 수도 있다. 타 작가 미술관은 상설 전시 작품 대부분을 해당 작가 작품으로 구성하고, 기획 전시를 통해 지향점 등이 맞닿는 다른 작가들의 전시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프란스 할스 미술관은 5세기에 걸쳐 제작된 회화·사진·영상·조각·도자기·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소장품을 상설 전시실에서 아끼지 않고 내보인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인물’ 주제 전시실에서는 전체 전시 작품 중 12점 중 3점에 할스의 작품이고, 그다음 마주하는 ‘성경 이야기’ 전시실에서는 전시작 7점 전체가 타 작가의 작품인 식이다.
 
인형의 집을 살펴보는 부자.
전시 작품 설명을 살펴보는 부자.

실제 미술관은 17세기 네덜란드 부르주아가 소장했던 호화스러운 인형의 집을 비롯해 화려한 도자기, 하를럼을 기반으로 활동한 작가의 작품이나 하를럼 풍경·역사를 다룬 작품 등으로 가득해 일종의 종합 미술관처럼 느껴진다.

다만 새롭게 전시를 구성할 때 지향점은 분명히 있다.

 
HAL관 내 기획 전시를 살펴보는 관람객.
마르테 더 펫 공공 부문 책임자는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고전, 근현대, 현대 상설 전시 작품들과 연결점이 있는 작품들로 새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며 “프란스 할스와 관련된 2가지 테마를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할스가 획기적인 접근을 했던 화가였던 것처럼, 작품의 혁신성에 주목한다. 할스가 실존 인물 초상화 작업에 집중했듯, 인간 중심적인 작품인지도 따진다.

더 펫 공공 부문 책임자는 “초상화 혹은 사람을 다른 과점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선호한다”며 “자연스럽게 추상 작품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획기적인 작품이더라도, 할스 작품이 지닌 ‘사람 중심’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술관은 하를럼 시민들의 삶을 사람 중심 영상물로 제작해 선보이고 있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세로 화면 속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해 수목 관리원 등 다양한 직종의 인물들을 조명한다.
HAL관 내 기획전시 작품.
마르테 더 펫 공공 부문 책임자
“다양성 확대 위해 이사회 구성 다양화”
마르테 더 펫 공공 부문 책임자


“예전에는 프란스 할스 미술관도 고학력 백인 남성을 위주로 이사회를 꾸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과감하게 구성에 변화를 줬습니다.”

마르테 더 펫 프란스 할스 미술관 공공 부문 책임자는 미술관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사회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네덜란드 미술관은 관장과 함께 이사회가 미술관의 주요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등 지대한 역할을 한다. 프란스 할스 미술관 역시 이사회가 신규 관장 후보를 지목하거나 재임 중인 관장의 퇴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비롯해 굵직한 사안의 결정권을 쥐고 있다.

더 펫 공공 부문 책임자는 “매년 4차례 관장이 이사회에 현황을 보고하는 체계로 운영된다”며 “미술관의 임무와 목표에 맞게 자금을 집행하고 예술적 활동을 이어가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 받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사회 구성원들의 평소 신념·가치관 등은 자연히 이들이 미술관의 행보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이사회는 공식적으로는 하를럼시가 임명하지만, 관장이나 미술관 관리 부서에서도 추천할 수 있다.

더 펫 공공 부문 책임자는 과거 프란스 할스 미술관 이사회가 과거 획일화된 구성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을 고백하며, 이제는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학력이 낮든, 다른 문화권 출신이든, 여성이든 색안경에서 벗어나 이사회로 근무합니다. 지금 시점으로 남녀 성비도 동일하네요. 덕분에 더 다양한 관점에서 미술관을 바라보고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글·사진=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프란스 할스 작품 ‘성 조지 민병대 장교 만찬’.
기념품점.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전시를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전시를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하를럼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을 살펴보는 관람객.
상설 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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