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립미술관 2023 마지막 기획전 ‘무수히 안녕’
경남도립미술관 2023 마지막 기획전 ‘무수히 안녕’
  • 백지영
  • 승인 2023.11.2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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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작가 6인·경남 장인 2명 참여
대발·도예 비롯 영상·설치·사진 다채
초월적 존재에 기대 누군가의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염원이 낡은 미신으로 경시되는 시대, 민속과 토속이라는 이름 아래 외면 받아온 원초적인 마음에 깃든 가치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경남도립미술관(이하 도립미술관)은 내년 2월 25일까지 미술관 1·2층 전시실에서 기획전 ‘무수한 안녕’을 개최한다.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는 ‘염원’이라는 오랜 마음과 행위에 숨겨진 다양한 가치를 동시대 미술과 전통 공예를 통해 살펴보는 전시다.

◇예술로 되새기는 토속·민속의 가치=이번 전시는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는 행위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삶 속 고난·역경을 극복하는 보이지 않는 동력으로 존재해왔지만, 서구 중심의 근대화 이후 합리적이지 못한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이러한 염원을 둘러싼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양상을 새롭게 주목하고 우리에게 잠재된 한국적 ‘얽힘’의 감각을 탐구한다.

전시에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동시대 미술작가 6명과 경남지역 장인 2명 등 8명이 참여한다. 김상돈, 서윤희, 신지선, 조현택, 제인 진 카이젠, 홍이현숙 등 작가 6인의 회화·영상·설치·사진 작품과 함께 조대용·최웅택 등 경남 장인의 대발·도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참여한 예술가 8명은 서로 다른 시대적 관점과 조형적 방식으로 토속 혹은 민속이란 이름으로 홀대받은 삶의 방식에 새롭게 빛을 불어넣는다.

전시는 ‘맞이’, ‘회복’, ‘연결’ 등 3개의 소주제로 꾸려진다.

먼저 1관 ‘맞이’에서는 마을 전통 제례 등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신지선의 영상, 믿음의 대상이었던 석상들이 상품화한 모습을 담은 조현택의 사진,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김상돈의 설치 작품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삶을 지탱하는 믿음의 여러 층위를 마주할 수 있다.

2관 ‘회복’은 둔감해진 오감을 틔워 믿음의 대상이나 거대한 자연과 접촉하는 홍이현숙의 영상, 제의와 같은 수행을 실천하며 아픈 기억을 승화시킨 서윤희의 회화를 집중도 있게 제시한다.

3관 ‘연결’은 선조의 정신을 따르고 전통적 방법을 고수해 온 조대용 염장과 최웅택 사기장의 대발·찻사발에서 시작한다. 제주 출생으로 덴마크에 입양된 작가 제인 진 카이젠이 전쟁과 분열로 고통받은 공동체를 다층적 시각으로 담아낸 영상 작품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단절을 뛰어넘는 위로의 공동체로 관람객을 인도한다.

◇경남 장인 염원 담긴 공예의 정수=특히 눈길이 가는 점은 경남지역 장인들도 함께 전시에 나서 경남 문화예술의 맥을 잇는 전통 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시에 참여한 조대용 염장은 4대째 통영에서 전통 방식으로 대나무 발을 만들어 온 장인으로, 국내 유일의 국가무형문화재 염장 기능 보유자다.

대발은 햇빛이나 바람을 가리거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과거 왕실 행사나 위패를 모시는 사당, 혼례식 등에서 관계를 맺는 소통의 도구로 사용돼 왔다.

조 염장은 “다른 염장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거나 잊히면서, 이제는 홀로 남았다”며 “지금껏 통영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해, 같은 경남이지만 창원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급격한 주거 형태 변화로 전통 발의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섬세한 문양으로 가득한 새로운 발을 제작하는 등 실험적 행보에 나서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귀문흑렴’ 등 신작들을 선보인다. 조 염장은 이번 전시가 잊혀가는 발의 가치를 다시 일깨우는 촉매제가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진해 가마터에서 선조의 발자취를 더듬어 웅천 찻사발 재현에 매진한 최웅택 사기장도 이번 전시를 함께한다. 최 사기장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도공들과 그 가족들이 왜국에 끌려간 뒤 명맥이 끊겼던 진해 웅천 찻사발을 재현하기 위해 가마터에서 사발 도편을 수집하고, 한국과 일본의 각종 문헌을 찾아 연구해 왔다. 그의 전시 공간에서는 40년 가까이 조선 도공들의 좇은 그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가 재현한 웅천 찻사발 5점과 수집한 조선 웅천 찻사발 5점, 그리고 파편으로 남은 100점의 옛 웅천 도자기 조각이다.

최 사기장은 “현대미술관에서 전통과 현대를 함께 선보이는 전시를 하게 돼 의미가 크다”며 “제 작품뿐만 아니라 선배 도공들이 남긴 작품을 함께 준비했으니 조선 도공이 남긴 얼을 함께 느끼고 가시면 좋겠다”고 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23일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무수히 안녕’ 개막식을 찾은 관람객이 국가무형문화재 조대용 염장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지난 23일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무수히 안녕’ 개막식을 찾은 관람객이 전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지난 23일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무수히 안녕’ 개막식을 찾은 관람객이 국가무형문화재 조대용 염장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무수히 안녕’에 전시된 조현택 작가의 사진 작품들.
지난 23일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무수히 안녕’ 개막식을 찾은 관람객이 김상돈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무수히 안녕’에 전시된 최웅택 사기장의 찻사발과 그가 수집한 옛 웅천 사기장들의 작품.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무수히 안녕’ 내 도내 전통 공예 장인들의 작품 전시 공간. 벽에 걸린 대발은 국가무형문화재 염장 기능 보유자 조대용 염장의 작품이며, 가운데 전시된 찻사발들은 최웅택 사기장이 빚은 찻사발과 그가 수집한 옛 웅천 사기장들의 작품이다.
최웅택 작품 ‘웅천 찻사발’. 사진=도립미술관
조대용 작품 ‘귀문흑렴’. 사진=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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