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가운데 한사람인 중국 송나라 시대 시인이자 정치가요,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구양수(歐陽修)는 시상이나 문학적 영감은 삼상사(三上思)에서 얻는다고 하였다. 침상(寢上) 즉, 침대에서 푹 자고 난 뒤의 맑은 정신에서, 마상(馬上) 즉, 말이나 자동차를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하며 멋진 풍경을 보면서, 그리고 측상(厠上) 즉, 화장실 변기 위에서 배설 후에 느끼는 쾌감에서 좋은 생각이나 묘안, 멋진 아이디어나 발상이 잘 떠오른다는 것이다. 마지막 화장실의 경우는 불결하거나 지저분해 쾌적한 환경이 아니라면 그런 기대를 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화장실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이나 유물은 이미 기원전 3000년대부터 1400년대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화장실은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의 수세식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물이 흘러가도록 시설해 그 위에 배설하게 했다고 한다. 고대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였던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있던 바빌로니아의 유적지인 우르 지방에서도 기원전 2200년의 수세의자식 변기가 발굴됐다. 하수관을 통해 분뇨를 수세 용수와 함께 건조한 모래땅으로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써서 강이나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게 했다. 크레타 섬의 크넷소스 궁전에도 기원전 1700년에 이미 도기로 된 변을 받는 접시형 틀과 나무로 만든 변좌가 갖춰진 수세식 변기가 발굴됐다.
최초의 현대식 수세식 화장실은 1596년 영국의 존 해링튼 경이 고안했다고 하는데, 윗부분에 물통이 있어서 물을 흘러가게 하는 손잡이와 배설물을 분뇨통에 흘러가게 하는 밸브도 있었다고 한다. 1847년 영국 정부는 런던에 대형 하수도 시설이 완성되자 시민들에게 모든 분뇨를 하수시설에 방류해야 한다는 법령을 발표하면서 현대식 화장실로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 특급호텔, 백화점 등에 인공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해방과 더불어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해, 일반화된 것은 경제 개발로 GNP가 상승하던 70년대부터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공중화장실 개선 작업이 전개됐으나 더러운 화장실은 여전하다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대적인 개선작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광역지자체들이 월드컵 경기장 유치를 위해 활발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수원시는 주도적으로 화장실 관련 특별전담팀을 꾸려 ‘화장실문화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대중음식점 등 다중 이용시설을 대상으로 ‘으뜸 화장실 콘테스트’를 실시하는 등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스위스의 공영채널인 SRF(Schweizer Radio und Fernsehen)은 지난 2월 19일에 방영된 프로그램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깨끗한 공중화장실을 가진 나라는 어디일까?’라는 물음을 던진 후,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공중화장실을 사용해본 외국인들이 적재적소에 화장실이 설치돼 있으면서 청결할뿐만 아니라, 음악이 흐르고 그림과 꽃들로 장식되어 있는가 하면 기분 좋은 향기까지 감돈다면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도 되겠다는 SNS의 칭찬의 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은 화장실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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