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6)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6)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 백지영
  • 승인 2023.11.2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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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중북부 도농 복합 도시 양주시. 경남은 물론 수도권 내에서도 도시명과 그 위치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도시다.

양주시는 북한산·감악산 등 굵직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 속 계곡을 따라 여러 유원지가 조성되면서 한때 수도권 나들이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유원지 대부분이 쇠퇴했지만 장흥유원지에는 각종 문화 예술 시설이 들어서면서 여전히 방문객을 유혹하고 있다.

내년이면 개관 10년을 맞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도 그중 하나다.

장욱진(1918~1990)은 박수근·이중섭·김환기 등과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소재의 내면에 담긴 근원적 본질을 간결한 구도와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해 ‘동심의 화가’로 불린다.

지금은 세종시에 속하는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을 기리는 미술관이 양주시에 들어선 것은 그의 생전 작품 활동에 기인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작업실 위치에 따라 덕소시기·수안보시기·용인시기 등으로 분류되는데, 양주시는 그 중 남양주 덕소가 과거 양주에 속했다는 인연을 계기로 미술관을 건립했다.

이계영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은 “사실 미술관이 처음 들어설 때는 출생이 어딘지 등 연고를 따지지만, 실제 개관 후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선보이면 그게 곧 미술관의 당위성이 된다”고 말했다.

 

 



◇한계 딛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대중교통으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으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하다.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가장 좋지만, 배차 간격이 짧아도 1시간 단위인 버스 시간을 맞춰 타는 것은 쉽지 않다. 고육지책으로 2㎞ 이상 도보로 이동하거나 택시를 잡아타야 미술관에 다다른다.

고된 이동 끝에 마주하는 미술관은 꼭 장욱진의 작품을 닮았다. ‘나는 심플하다’고 말해온 작가처럼 오색 단풍으로 물든 산을 병풍 삼아 펼쳐진 미술관은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미학을 품고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는 길 마주하는 장흥조각공원이나 냇가 넘어 보이는 캠핑장 등에서 자연 속 여유로움이 물씬 느껴진다.

사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그간 ‘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 기획을 통해 살펴본 국내외 작가미술관 6곳 중 가장 경남의 현실을 투영해 살펴보기 좋은 미술관이다.

광역 단위가 아닌 인구 26만 명의 기초 지자체가 9년 전 조성한 만큼 ‘저 나라는 예술에 대한 인식부터 다르다’거나 ‘저긴 예산과 후원 규모 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 ‘미술관 역사나 건물부터 비교가 쉽지 않다’ 등 핑곗거리가 통하지 않는다.

양주시립미술관은 별도의 사업소가 아닌 양주시 소속 하나의 팀으로 운영된다. 관장과 행정팀장, 전시 담당 학예사, 교육 담당 학예사, 레지던스 매니저를 비롯해 이들을 1:1로 돕는 학예직 코디네이터, 매표·미화 인력 등으로 구성된다.

 


넉넉지 않은 인력 구성과 함께 열악한 접근성 등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를 뛰어넘는 알찬 운영으로 새롭게 미술관을 준비하는 지자체들에 벤치마킹이 필요한 곳으로 꼽힌다. 미술 관련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적은 인력으로도 좋은 전시를 준비해, 갈 때마다 새롭고 좋다”는 호평이 따라온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 RM이 다녀가거나 TV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한 유명 도슨트가 국내 추천 미술관으로 이곳을 콕 집은 일 등을 계기로 작가를 잘 모르던 일반 대중의 방문도 늘었다.

미술관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로컬 100’에 이름을 올렸다. 양주에서는 단 2곳이 선정됐는데 당당히 한 자리를 꿰찼다.

이 관장은 “가족 단위로 멋진 풍광 속 휴식을 위해 찾는 방문객도 계시지만, 장욱진을 보기 위해 일부러 타지에서 발걸음하는 분도 적지 않다”며 “양주 대표 문화시설이자 공립미술관으로서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도시 브랜딩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미술관이 꿈꾸는 선순환 구조

미술관은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장욱진을 지금도 유효한 작가로 만들기 위해 전시, 강연, 연구, 교육 등 다양한 행보에 나서고 있다.

10년 가까이 한 작가를 설명하는 기획전을 계속해 준비하다 보면 ‘장욱진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작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과 동시에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어제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작가를 마주한다.

오는 12월 3일까지 개최하는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들’도 이러한 고민 끝에 마련한 기획전이다. 장욱진 예술의 단순성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한 전시로, 순수미술동인 ‘신사실파’에서 함께 활동한 김환기·백영수·유영국·이규상·이중섭·장욱진 등 근현대 미술 거장 6인을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점을 추적해 나간다.

이 관장은 “장욱진이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이유를 계속해 제시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며 “동시대 미술과 장욱진의 접점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양주시립미술관의 행보 중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뉴드로잉 프로젝트와 777 레지던스 운영을 통해 장기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이다.

 


뉴드로잉 프로젝트는 전국 미술대학(원) 재학생과 청년 작가를 대상으로 한 공모로, 장욱진의 작품세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궤를 같이하는 작품을 발굴하는 사업이다. 공모 선정작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선보이는데, 공립 미술관에서 예비 단계 작가도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로 꼽힌다.

777 레지던스는 미술관 산하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내 입주·창작공간으로, 회화·사진·복합매체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다. 기초 지자체 단위의 레지던스 운영도 인상적이지만, 스튜디오에 레지던스와 지역주민들을 위한 생활문화센터가 공존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단순히 한 건물에 자리 잡은 것을 넘어 레지던스 입주 작가가 생활문화센터에서 지역 주민에게 예술 강좌를 진행하는 등 동반 상승효과를 꾀한다.

“어느 정도 검증되거나 누가 봐도 좋은 작가들은 다른 미술관에서도 많이 보여주잖아요. 예비 작가들이 뉴드로잉 프로젝트를 통해 동기를 부여받아 성장하고, 레지던스 입주 작가들이 비평 워크숍이나 단체 기획전 등을 통해 밀도 높은 작품으로 더 대중에게 알려지고, 이렇게 자리매김한 작가들과 좋은 기획전시로 함께하고…. 이런 순환 구조가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기초 지자체 미술관, ‘작가’ 조명이 차별화의 길”

이계영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기초 지자체가 미술관을 운영한다면, 알찬 ‘작가 미술관’이 해법일지도 모릅니다.”

이계영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은 지자체가 한 작가만을 위한 미술관을 운영할 필요가 있냐는 일각의 견해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최근 미술계에는 한때 전국에서 우후죽순 건립됐던 공립작가미술관 부실 운영 사례 등을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립작가미술관 건립 심의에 엄격해졌다는 이야기가 번지고 있다.

개관 9년 만에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을 이끄는 이 관장의 생각은 어떨까.

“작가 미술관 중에서는 적은 인력으로 열심히 운영해 선도적인 위치에 올랐다고 자부합니다. 문체부 기조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가요. 하지만 미술관을 그냥 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말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현실적으로 보면 기초 지자체 단위에서는 종합이 아닌 작가 미술관을 운영해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미 광역 지자체가 운영하는 종합 미술관들이 귀하고 좋은 작품들을 선점한 상황에서, 훨씬 적은 예산을 지닌 기초 지자체 미술관이 마찬가지로 종합 미술관으로 승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계산이다.

이 관장은 “작가 미술관이 완벽한 대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정적인 여건에서 가장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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