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꽃이 피고 소낙비가 오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
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되네
오래 써 친숙한 말로 인사를 건네면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들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두는 내일을 기약하고
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
집들이 안녕의 문을 닫는 저녁엔
꽃의 말로 안부를 전하고
분홍신 신고 걸어가 닿을 내일이 있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네
불 켜진 집들의 마음을 나는 다 아네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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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요. 약속하지 않아도 계절처럼 찾아오는 사람은 소낙비처럼 함박눈처럼 다정함이 가득해요. 이 사람과 함께 걸으면서 꽃이 피는 소리를 듣고요, 낙엽 흩어지는 풍경을 만나기도 해요. 그렇게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는 걸 알아가면서 어제 낯선 사람이던 우리가 오늘 낯익은 사람이 되어가는 그런 삶에 가까이 가고 있어요. 세상이 참으로 인색하고 무심하다는 생각은 잠시 밀쳐두기로 해요. 세상 사는 일이 별거 있겠어요. 뒷말하기를 즐기고 비난을 비판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보여도 그걸 잘 비켜 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여서 다행이에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사람살이가 거기서 거기예요. 그러니 너무 일찍, 너무 함부로, 좌절하지 말았으면 해요. 사색과 정감이 배어있는 시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읽고 세상에서 시는 이렇게 존재가치를 부여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생이 온통 말랑해지는 시를 읽으며 오늘의 소망과 내일의 기원에 기대어 봅니다.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들과 세상을 적시며 함께 푸르러지는 건 근사한 일일 거예요.
통영문학상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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