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열린 방
[경일춘추]열린 방
  • 경남일보
  • 승인 2023.12.0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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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경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권인경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누구나 ‘자신만의 방’이 있다. 방은 거주자만의 작은 안식처이자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이다. 방에는 지극히 사적이며 최소의 공간인 잠을 자는 영역이 있고 지식의 영역인 책상이나 책장 등에 방주인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소품들도 놓여 있을 것이다. 또한 외부로 열린 창이나 그림 액자와 같이 닫힌 방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도 있다. 그곳에는 오롯이 방의 주인만이 가지는 특권이 있다. 자신의 취향인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원하는 방식으로 꾸미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절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비밀 일기 등도 숨겨두며 나만의 이야기들을 모아놓는다. 거주자의 삶의 궤적과 역사가 그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 사람의 가치와 취향이 곳곳에 배어 있다.

비슷한 네모의 큐브 공간인 방은 가변적인 공간이며 어떤 사람이 그 공간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들로 변하게 된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최소단위인 방은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의 확장된 영역이며 그를 대변하는 공간이다. 결국 방의 모습을 통해 방의 주인에 대해 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방들과 나의 방 사이는 인간과 인간의 거리처럼 벽으로 분리돼 있고 각각의 삶이 투영된 방에서는 자기만의 서사가 펼쳐진다. 각각의 방들은 동상이몽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뿜어낸다. 지극히 닫혀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외부로 열린 창 혹은 문을 통해 때로는 열린 공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동생은 어린 시절 수술 후 놀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얻었다. 충격이든 공포든 그 어떤 것으로 인해 입을 닫았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저버렸다. 그는 방에 오랜 시간을 머문다. 그곳에는 시계가 없고 그는 늘 자신만의 루틴대로 삶을 살아간다. 특히 문을 아주 조금 열어놓는데 쓰레받기를 문과 문틀 사이에 끼워놓은 정도만 공간을 꼭 열어둔다. 완전히 닫지도 활짝 열지도 않은채…, 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이나 안식처가 필요한데 인간은 그 고립감을 필요로 함과 동시에 또한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을 원하지도 않는다. 완전히 갇혀 버리기는 두렵고 외부와의 자그마한 소통의 끈은 놓아둬야 하는 것 이다. 여기에는 조용한 은거를 원하면서도 외부를 조망하며 고립되지 않고자 하는 인간의 이중심리가 반영돼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들어오면 고립, 나가면 대립’이라 했었는데 인간은 결국 고립을 원하지도, 대립을 원하지도 않는 딱 쓰레받기가 들어갈 틈 만큼의 소통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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