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모 논설위원
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자진(自盡) 뉴스가 전파를 탄 11월 29일. 김동리 단편 ‘등신불’을 들췄다. 오래전에 읽어 주인공의 소신공양 배경 디테일이 기억에서 지워졌던 거다. 소설 속 만적은 자신과는 씨(氏)와 배(腹)가 모두 다른 형이 있었다. 그가 의붓어미의 구박으로 집을 나가자 만적은 비구가 되어 긴 세월 형을 찾던 끝에 문둥이가 된 형을 만나고, 그 충격에 자신을 불태운다.
▶전태일은 1970년 초겨울 평화시장 노동자 시위 현장에서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댕겼다. 더 이상 탈 것이 없어 몸에 붙은 불이 저절로 꺼질 때까지 외치다 스러져 갔다. 그 마지막까지 외친 말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 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마라’였다. 그의 분신도 만적의 소신공양(燒身供養)과 같은 살신성인이었다.
▶그제 용주사 다비(茶毘)장의 한줄금 뭉게연기로 흩어져 이승을 떠난 자승스님은 승과 속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조계종단 처음으로 두 차례 총무원장을 역임하여 불교계 안팎의 존숭을 받았다. 최고 훈장도 추서됐다. 세수 69년은 요새 추세로 볼 때 건강에 아직 문제 없을 때라 여겨진다. 무슨 내막이 있었을까. 종단에선 애써 소신공양이라고들 한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 해 죄송하다든지, 종단 미래 잘 챙겨달라는 당부까지 여러 뜻의 유서를 남겼다. 하지만 왜 그런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배경은 한 가닥 암시조차 없다. 천년고찰에서의 소사(燒死)가 사부대중 눈에 숭엄한 소신공양이고자 했다면 등신불이 된 만적 나한이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처럼 그 이유와 명분이 뚜렷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크다. 정재모 논설위원
▶전태일은 1970년 초겨울 평화시장 노동자 시위 현장에서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댕겼다. 더 이상 탈 것이 없어 몸에 붙은 불이 저절로 꺼질 때까지 외치다 스러져 갔다. 그 마지막까지 외친 말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 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마라’였다. 그의 분신도 만적의 소신공양(燒身供養)과 같은 살신성인이었다.
▶그제 용주사 다비(茶毘)장의 한줄금 뭉게연기로 흩어져 이승을 떠난 자승스님은 승과 속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조계종단 처음으로 두 차례 총무원장을 역임하여 불교계 안팎의 존숭을 받았다. 최고 훈장도 추서됐다. 세수 69년은 요새 추세로 볼 때 건강에 아직 문제 없을 때라 여겨진다. 무슨 내막이 있었을까. 종단에선 애써 소신공양이라고들 한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 해 죄송하다든지, 종단 미래 잘 챙겨달라는 당부까지 여러 뜻의 유서를 남겼다. 하지만 왜 그런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배경은 한 가닥 암시조차 없다. 천년고찰에서의 소사(燒死)가 사부대중 눈에 숭엄한 소신공양이고자 했다면 등신불이 된 만적 나한이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처럼 그 이유와 명분이 뚜렷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크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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