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8]문경새재 과거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8]문경새재 과거길
  • 경남일보
  • 승인 2023.12.0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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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들의 기원 담아 굽이굽이 이어진 과거길
 
문경새재 과거길 시작점.
◇건강과 힐링 급제를 위한 문경새재 과거길

조선시대 영남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김천 쪽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추풍령과 문경에서 한양으로 가는 문경새재, 영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죽령이 있었다. 죽령으로 가는 선비들은 죽죽 미끄러져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추풍령을 넘어가는 선비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문경새재를 넘어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은 말 그대로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 듣고(聞慶) 새처럼 비상하여 높은 벼슬을 얻는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선비가 문경새재 고갯길로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고 한다. 시험을 쳐서 장원급제할 일이 없는 필자는 건강 급제와 힐링 급제를 위해 명품걷기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문경새재를 찾았다.

때마침 문경사과축제를 보러 온 관광객들로 인해 버스를 먼 곳에다 대놓고 문경새재 입구까지 걸어서 갔다. 문경새재 과거길은 제1 관문(주흘관)에서 제 3관문(조령관)까지 편도 7㎞, 왕복 14㎞ 정도 되는 숲길이다. 중간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쉬엄쉬엄 얘기를 나누면서 걸으면 4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하며 트레킹(걷기 여행)을 시작했다.

제1 관문인 주흘관 앞 사과 농원에는 빨갛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모두 사과 볼에 몰려 있는 느낌이었다. 주흘관을 지나자 흙길로 조성된 평탄한 과거길이 반겨 주었다. 길섶을 따라 만들어 놓은 수로와 우거진 숲이 한껏 정취를 돋우고, 숲길 옆 병풍처럼 선 벼랑도 풍경을 더욱 멋있게 연출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목사, 현감 등의 선정비를 따로 세우지 않고 바위벽에다 빗돌 모양으로 테두리를 해서 비문을 새겨 놓았다. 주로 재임 기간에 새겨놓은 비문이었다. 백성들을 돌봐야 할 시간에 비문에만 신경을 쓴 듯하여 새겨진 비문이 선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고혈을 짠 흔적처럼 보여 마음이 불편했다.



◇상처가 익어 웃음으로 핀 과거길

벼슬아치들의 치적을 새겨 놓은 절벽을 지나자 조산(造山)과 너와로 인 쉼터가 나타났다. 악행을 휘두른 위정자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없었던 주민들은 돌로써 조산을 쌓아 자신들의 아픔을 위무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소망하는 마음을 돌로 쌓아 산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길 한편을 에워싼 절벽 모서리에 길게 뻗어 나온 바위가 하나 있었다. ‘지름틀바우’다. 받침틀과 누름틀 사이에 볶은 깨 등을 올려놓고 누름틀을 눌러 기름을 짜던 그 누름틀을 닮았다 해서 지름틀바우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숲길로 난 과거길은 온통 얘깃거리로 가득했다. 관리들과 나그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어놓은 조령원터, 도적들이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덮치곤 했던 곳인 마당바위, 지금으로 치면 경부고속도로 중간 지점에 선 휴게소와 같은 역할을 한 주막, 임금의 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하던 교인처인 교귀정과 볼수록 특이한 형태의 수형인 교귀정소나무, 그리고 계곡 기슭에 지나가는 송아지를 잡아먹었을 정도의 큰 꾸구리가 바위 밑에 살았다는 꾸구리바위 등 열 걸음이 멀다 하고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스토리텔링 화제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상처난 소나무.
길섶,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밑동에 깊게 팬 상처를 계급장처럼 달고 서 있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군이 연료로 쓰기 위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8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깊게 팬 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긴 세월 동안 우리 역사를 읽어 왔을 V자 모양으로 팬 소나무의 상처는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어처구니없는 친일 위정자들의 행태를 보고 울음 대신 웃음으로 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숲길을 걸어가면 길섶에 ‘산불됴심’이라고 쓴 비가 서 있었다. 우리 옛말의 흔적을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석은 조선시대 세워진 국내 유일의 순수한글 비석이라고 한다. 기분이 업 되어 빠른 걸음으로 걷자 이마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때마침 땀을 씻고 가라는 듯 15m가 넘는 조곡폭포의 물줄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산불됴심 표지석.
제2 관인 조곡관.
◇무지한 지도자가 낳은 수많은 희생

제2 관문인 조곡관을 지나 조곡약수와 바위굴, 귀틀집에 깃든 얘기와 문경새재아리랑비가 들려주는 구성진 민요 가락을 새기며 걸어가자 솟대새가 무리 지어 선 이진터에 닿았다.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1만8500명의 왜군을 이끌고 문경새재를 넘기 위해 진안리에서 진을 치고 정탐하고 있을 때, 신립 장군이 농민군 8000명을 이끌고 제1 관문에 1진을 배치하고 2진을 이진터에 배치했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새재에서 게릴라전을 통해 왜적을 방어하자는 김여물 장수의 간언을 무시하고 허수아비를 세워 초병으로 위장한 뒤, 충주 달천의 탄금대로 이동하여 배수진을 쳤으나 왜군 초병이 허수아비 머리에 까마귀가 앉아 우는 것을 보고 가짜 초병임을 알고 손쉽게 새재를 통과했다고 한다.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조선군은 몰살당하고 패전한 신립 장군도 자결했다. 지도자의 통솔력과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조령원터 돌담.
낙동강 발원지인 문경초점.
제3 관문인 조령관을 얼마 앞두고 잘 닦인 문경새재길 대신 옛날 과거길로 걸어갔다. 5분여를 올라가자 문경초점이란 표석 옆에 있는 큰 샘 하나를 만났다. 낙동강 발원지로 태백산의 황지, 소백산 순흥, 그리고 문경의 초점 세 곳이 있는데 이 세 곳의 물이 합류해 낙동강을 이룬다고 한다. 낙동강 발원지인 초점 위쪽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소원을 빌던 책바위를 지나 조령관에 닿자, 버스 시간에 쫓긴 필자는 곧바로 원점 회귀를 했다. 과거길 옆 계곡으로 흘러가는 물에선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건강 급제, 힐링 급제를 한 하루였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책바위 근처에 쌓아놓은 소원탑.
문경새재 옛 과거길.
과거길 길섶에 있는 수로.
지름틀바우.
과거길 옆에 있는 귀틀집.
문경새재 주막.
문경새재아리랑비와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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