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둥글어지고 있다(이경)
여자가 마당에 들어선다
수건을 벗어 해의 수염을 툭툭 털고
불은 젖을 문지른다 둥글게
시계 바늘 반대 방향이다
울음소리 뚝 그치고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제 것 아닌 것처럼 저녁 하늘에 젖을 풀어놓고
여자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물을 흘려보내는 산처럼
몸에서 몸으로 건너가는 먼 길
순한 짐승처럼 내려와 엎드리는 산그림자
여자가 산 날맹이를 설핏 보았나
검푸른 날이 하늘을 베어 마당에 깔았다
마루 끝에 걸터앉은 반가사유
관음의 머리가 비스듬히 서쪽으로 기울었나
밥물 넘치듯
흰 초저녁달이 조금씩
둥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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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비밀스럽게 감싸던 젖가슴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대담해졌다.
여자와 어머니의 차이를 본다.
하루의 노동을 툭툭 털고 해 질 녘 마루 끝에 걸쳐 앉은 모습이
관음의 반가사유상이다.
한 쪽 무릎을 세우고 퉁퉁 부은 젖가슴을 물리자
아기는 뚝 울음을 멈추고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처럼
몸에서 몸으로 흘러가는 저 생명수
모성의 거룩한 모습이다.
둥글다는 것은 모서리가 죄다 없다는 것이다
둥글게 젖줄을 쓰다듬는 것은 둥근 생명을 기르고
둥근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방을 까지 주변의 경계를 놓치지 않는 눈빛
보호본능에 찰나의 순간도 야성을 숨기지 않는 모성.
더욱 거룩하시다.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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