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삶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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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12.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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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경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권인경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얼마 전 미술 시간에 감상 수업을 하며 조선시대 화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옛 선비가 물을 바라보며 바위에 기대어 쉬는 모습의 그림으로 소위 요새 말로 ‘물 멍’ 그림이라 설명을 하니 아이들이 지극히 공감을 했다.

요즘은 ‘쉼’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이 생겨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진정한 ‘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 휴식조차도 SNS의 한 장면이 돼야 하는 피곤한 강박 속에 현대인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비틀즈의 ‘Let it be’가 지금도 명곡으로 불리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집착이나 강박을 내려놓고 지금 순간의 있는 그대로를 즐기고 누리는 여유를 가지는 것. 이것이 현대인에게 지극히 필요한 ‘쉼’이지 않을까.

오래 전 TV에서 부처님 오신 날 특집 드라마를 방영했다. 깨달음을 얻고자 스님이 된 사람이 어떤 노력을 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결국 하산하다가 벼랑에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간신히 벼랑 끝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버티고 있는데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점점 힘이 빠진 스님은 결국 손을 놓고 말았다. 그런데 추락은커녕 바로 발이 땅에 닿았다. 너무 어두워 벼랑이라고 알고 있었던 곳이 바닥이 있는 안전한 땅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살면서 매 순간 선택을 강요당하고 해야만 하는 것들을 정해놓고 명예라는 허울에 집착하고 부를 얻고자 순간의 행복을 잃기도 하며 쉼 없이 살아간다. 왜 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대신에 당장 내가 어떻게 보여 질지를 신경 쓰느라 본인의 인생 페이스를 잃고, 남들과 힘들게 비교하고 좌절하며 살아간다.

특히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물론 어른 아이 할 것 없지만 너무 어린 아이들 조차도 강박에, 집착에, 비교에 힘들어하며 결국 무기력에 빠지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 정작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교육하지 못하고 어떻게 성공할지, 무엇을 하며 돈을 벌지만 교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이 길어질수록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정말 큰 혼란이 인생에 닥칠 것이다. 긴 인생에서 때로는 긴 호흡이 필요할 때도 있고 달려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내려놓아도 괜찮고 쉬면서 가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할 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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