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돈의 정치학 ‘요물과 콩고물’
[경일포럼]돈의 정치학 ‘요물과 콩고물’
  • 경남일보
  • 승인 2023.12.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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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돈은 사람을 알아본다. 돈이란 무생물인데 사람을 알아본다면 생물이란 말이 되겠다. 돈이 생물이라는 말은 사람들 사이에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비유적인 표현이다. 물론 나도 돈이 생물이라는 데 의의가 없다. 돈은 생물처럼 감은 눈을 뜨기도 하고, 벌린 입을 닫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돈이 생물이라기보다, 요물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생물은 한번 죽으면 생명이 끝나지만, 요물은 꿈틀거리며 살면서 쥐 죽은 듯이 죽고, 또 죽었다가는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돈의 눈이 한번 멀게 되면, 천지 분간도 하지 못하면서 길길이 날뛴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의 일들이 서로 이해관계를 맺으면서 겹겹이 다변화되면, 돈에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진다. 돈이 공적 영역에 들어서면 흐릿해지면서 잘 순환되지 않는다. 이것은 역내(域內)의 요물로 꿈틀댄다. 역내의 돈 중에는 유독 눈먼 돈이 많다고 하지 않은가? 이럴 때는 돈이 사람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정치를 꿰뚫어본다.

지난 정부의 상징적인 축조물(제도)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약칭 ‘공수처’요, 다른 하나는 세칭 ‘한전공대’다. 이 두 가지를 만드는 데 엄청나게 공을 들인 것은 국민도 다 안다. 이 두 개의 제도를 정착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5년 동안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이 두 가지 일이 무엇이기에 모든 것을 걸었나? 국민이 우민이 아니라면, 모두 국가의 대의(大義)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정파적인 목적의 작은 이익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질 텐데. 공수처는 영장 청구 5전5패다. 연전연패는 그렇다고 치자. 3년 동안 300억을 쓰면서 달랑 기소 세 건을 했다. 기소 한 건 당 무려 백억을 쓴 셈이다. 세상에 이런 고비용 비효율의 사례는 없다. 또 얼마 전의 국감에서 밝혀졌듯이, 200조 빚더미의 한전이 지원하는 허허벌판 위의 학교는 입학식을 위해 4억 이상을 썼다고 한다. 총장 연봉이 6억이요, 교수 평균 연봉이 3억이란다. 일반 국립대의 서너 배다. 돈 잔치도 이런 돈 잔치가 없다.

돈이 정치의 영역에 들어서면, 돈은 요물이 아니라 콩고물이 된다. 저 박정희 시대의 유력한 정객 한 사람은 떡을 만들다 보면, 손에 콩고물이 묻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돈의 정치학은 이처럼 정치의 수사학으로 변질된다. 정치를 비유한 말 중에서, 역사적으로 이 표현보다 적확하고도 빛나는 문채(文彩, figura)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용기 있고 화려한 발언을 끝으로, 그는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했다. 그는 칩거해, 돈이나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 또 다른 문채의 도자예술에 빠져듦으로써 뜬세상과 등을 질 수가 있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권력 무상을 깨달았던 점에서, 그는 풍류 정객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돈에 연루된 정치인 치고 반성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잘못 걸리면 재수없다다. 몇 년간 정계 최대의 이슈가 되어왔던 토착비리 사건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장동 개발은 정치와 유착된 비리다. 어디 대장동 뿐이랴? 백현동도 있고, 정자동도 있다. 참 오랜 만의 첫 발걸음이다. 이제 줄줄이 법원의 판단이 나올 것이다. 사건이 워낙 대형이어서 모든 판단이 나오려면 아직도 천릿길이다.

이처럼 돈이 정치적인 의도를 잘 알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치화된 눈먼 돈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거다. 이 아우성은 민간 업자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안겨주어도 반성조차 하지 않는 우리의 정치 현실로 향한다. 이런저런 돈들이 요물로 꿈틀대다가, 향후 콩고물로 판명되면 정계를 요동치게 만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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