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기 논설위원
남명 조식 선생은 덕산을 ‘무릉도원’으로 쳤다. 그토록 닮고자 했던 지리산 천왕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천왕봉서 흘러오는 두 물머리(중산리 물과 대원사골 물)가 만나는 양단수가 은하수처럼 흘러서다. 남명은 그 곳에다 ‘산천재’를 짓고 ‘빈손으로 들어와 무얼 먹고 살까 하지만, 은하십리 흐르는 물만 있어도 족하다’고 노래했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천왕봉’처럼 천석들이 큰 종을 울리고자 했던 남명의 흔적과 정신은 지리산 덕산 곳곳에 남아 있다. 현실지향적인 남명 사상과 정신은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져 기업가 정신으로 확장되면서 덕산이 진주, 의령과 더불어 기업가 정신의 성지가 되고 있을 정도다. 지리산 천왕봉 자연자원과 남명의 인문학이 맞닿은 지점이니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다.
남명이 ‘무릉도원’으로 삼았던 지리산 덕산이 요즘 심상찮다. ‘은하십리 두류산 양단수’가 까딱하면 흔적조차 사라질까 걱정이다. 남명의 흔적은 물론이고 남명정신까지 수장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남명의 ‘무릉도원’에다 남강댐 보다 서너 배나 더 큰 규모의 덕산댐을 짓겠다는 시도 때문이다. 덕산 입구 ‘입덕문’ 부근에 거대한 댐을 만들어 물을 부산으로 끌어가겠다는 발상이다. 높이 100m, 길이 150m, 유역면적 247.86㎢, 저수량 10억 8000t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부산 물 문제’ 해결을 위해 지리산 물을 끌고 가겠다는 발상은 한두 번이 아니다. 잊혀질만하면 다시 꿈틀대고 있다. 덕산댐 문제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 진주 산청 부산을 발칵 뒤집어 놓고 부산시의 사과로 일단락된 사안을 다시 꺼낸 데는, 윤석열 정부의 ‘치수 패러다임 전환’을 활용해 보자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움직임이 감지된다. 틈만 나면 지리산 자연자원과 남명정신을 맨 앞에서 팔아먹고 있는 산청군과 의회가 여론을 살피며 여차하면 동조할 태세다. 일각의 기대 부푼 장밋빛 전망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의회의장은 더 나아가 “산청의 미래를 위한 덕산댐 건설 타당성” 발언을 했다가 환경시민사회단체의 호된 비난과 사과요구를 받은 것만 봐도 그렇다. 지역공동체의 갈등유발을 적극 활용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노림수가 현실화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천혜의 자연자원과 인문학적 유산을 지키고 살려야 할 산청군과 의회가 부화뇌동해선 안 될 일이다.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진주시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먹는 물이 위협받고 심각한 생태 훼손이 우려되는 만큼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고, 막아야 한다. 경남도의 책임은 더 막중하다. 도민 생명권을 위협하는 덕산댐 건설시도를 단호하게 대처해야 옳다.
덕산댐 반대이유는 차고 넘친다. 부산시 환경부 국토교통부는 근본적인 치수대책 없이 지리산에 거대한 댐을 만들겠다는 발상자체를 폐기해야 한다. 새 정부의 변화된 치수정책을 지리산 덕산댐 건설 명분으로 삼았다간,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 잊지 말기 바란다. 지리산과 덕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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