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
[경일춘추]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
  • 경남일보
  • 승인 2023.12.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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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시인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시인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일제 말기부터 한국전쟁기까지 작가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자전적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개성 박적골에 살던 주인공인 ‘나’는 7살 무렵 엄마의 손에 이끌려 상경하게 된다. 시골의 산과 들에서 군것질거리와 소일거리를 구하며 놀던 주인공에게 서울 생활은 만 가지가 낯설었다. 개중 기이했던 것은 서울 아이들이 아카시아(요즘은 ‘아까시’라고 쓴다.) 꽃을 송이째 따 먹는 모습이었다.

“몰래 그 꽃을 한 송이 먹어 보았더니 비릿하고 들척지근했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이 났다. 무언가로 입가심을 해야 들뜬 비위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싱아가 생각났다. (…)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필자는 한 번도 ‘싱아’를 먹어 보지 못했다. 그러니 필자에게 더 익숙한 것은 아까시 꽃 쪽이다. 5월이면 소설 속 서울 아이들처럼 동네 뒷산에 하얗게 핀 아까시 꽃을 송이째 따서 먹곤 했다. 그러나 개성에서 나고 자란 박완서 작가는 아까시 꽃 때문에 비위가 상해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헛구역질을 하며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간절하게 싱아를 찾아 헤맸다고 썼다. 당연히 서울에서는 싱아를 찾을 수 없었고, 소설 속 ‘나’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하고 망연자실하고 만다.

어렸을 적 시골 큰집에 가면 일부러 동네 과수원 옆을 지나다니며 연두색으로 동그랗게 말려 올라오는 포도나무 새순을 똑똑 끊어먹곤 했다. 과수원 주인이 보면 기겁할 일이었지만, 새콤한 포도 새순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짐작건대 싱아의 맛도 포도 새순처럼 새콤새콤한 맛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야생에서 주전부리를 찾는 일은 계절마다 새로운 놀이고 소일거리였다. 봄이면 삘기 새순을 찾아 들판을 헤맸고, 여름이면 산딸기에, 샐비어 꽃꿀에, 까마중, 괭이밥의 새콤한 맛, 칡뿌리의 달달씁쓸한 맛에 침이 고였었다.

박완서 작가에게 싱아는 상경하면서 완전히 잃어버린 ‘사라진 그 시절’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걱정 근심 없이 산과 들에 난 풀과 꽃과 열매를 따 먹고, 학교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고나를 녹이던 그리운 그 시절 말이다. 탕후루가 겨울철 주전부리 시장을 평정한 지도 꽤 된 것 같다. 2023년도의 어린이가 성인이 됐을 때 떠올리게 될 ‘그 많던 싱아’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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