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이 들어서 키오스크와 친해질 수 있을까
[기고]나이 들어서 키오스크와 친해질 수 있을까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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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우 진주시 상평동
햄버거집에는 당연히 있으려니 한다. 커피점에도 은근슬쩍 입구를 점령했다. 음식점에서도 메뉴사진이 꽉 찬 이 녀석을 처음 본 것은 일본여행때 같다. 음식점에서까지 이럴 일인가 라며 고심 끝에 우동 한 그릇을 겨우 얻어먹었다. 생각해보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등장한지는 한참 지났다.

이제는 시중의 여느 식당에도 버젓이 자리를 잡았다. 일부는 아예 손님 테이블을 먼저 선점하고 앉아, 메뉴를 고르면 결제까지 당당히 요구한다. 밥값도 선불인 셈이다. “뭐 드시겠어요?” 라는 질문을 받아본지가 오래된거 같다.

저녁 회식에 이어지는 술자리에도 일행인양 익숙하다. 손님 몇 명에 안주, 주류 주문을 척척 받고, 추가 주문도 차곡차곡 받아 결제금액을 뽑아준다. 기계가 주문받고 계산하고, 사람이 서빙을 한다. 간혹 로봇이 음식을 실어오는 곳도 있는데 이 경우는 손님이 음식을 상으로 옮겨 차려야 한다. 주객이 전도됐다.

영화관의 그것은 좀 더 복잡하다. 단관극장 세대인 50대에게 멀티플렉스 상영관도 불친절한 편인데, 상영관이 7~8개, 상영영화가 4~5편, 상영시간표는 영화들의 러닝타임에 따라 각각 다르다. 좌석을 고르는 문제를 풀고 나면 계산은 카드? 포인트? 현금도 가능했나? 영화관의 이 녀석은 복잡한 만큼 불친절하다.

판매부스에 가서 직원에게 “몇시 표, 한 장 주세요”이라고 하면 됐는데, 이제 혼자서 영화를 고르고 상영시간을 고르고 좌석을 골라야 한다. 보통 두 자리가 묶인 좌석은 뻔히 비어 있는데도 아예 선택이 안되는 곳도 있다. 더듬다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참, 또 포토티켓이라는 것을 만들 것인지 제안도 한다. 이 또한 멀고 험한 길이다. 영화 2시간에 주차 2시간이 무료인데, 주차등록도 빠트리면 안된다. 심지어 그건 또 다른 녀석이 맡은 일이다. 대감염의 시대를 지나고도 이렇게나 남의 손가락 터치와 활발한 교류라니.

한창 흥행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홍보 영상 중에 재밌는 걸 하나 봤다. 주연배우 정우성이 나와 영화관의 그 녀석 사용법을 시연해주는 영상이었다. 옳거니, 50에 접어든 청춘스타 배우가 함께 나이들어가는 중년팬들을 위해 보내는 학습용 영상 한편이다. 순서대로 착착 따라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오류 메시지를 반사하는지 손 끝이 떨린다. 누르면 나오는 것이 커피자판기와 다를바 없는 구조인데 녀석의 진화는 너무 빠르다.

현란한 선택의 시간과 복잡한 결제의 루트를 무사히 통과하면 내 시간과 돈의 소비를 허락받는다. 녀석이 단계마다 쏟아내는 오류메시지와 협상이 잘 된다면 말이다.

점점 다양해지는 녀석들의 면상을 앞에 두고 더듬더듬 미션을 완수하고 나면 ‘아 그래도 나는 독거노인이 돼도 식당에서 밥 한 그릇은 사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서글픈 위안을 갖게 된다. 몇년만 더 빨리 늙었더라도 이 녀석들의 오류 메시지에 지쳐 나가 떨어지고 집에서 찬 밥에 지상파 일일드라마나 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차 하면 밀려날 디지털 세파에 오늘도 막차를 타고 아슬아슬 살아낸다. ‘아, △△페이는 또 뭐란 말인가.’

채민우 진주시 상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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