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흥남철수작전, 희망의 크리스마스 항해
[기고]흥남철수작전, 희망의 크리스마스 항해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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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주 前 국방정신전력원 전문연구원
조우주 前 국방정신전력원 전문연구원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넘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 결과, 9월 28일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 38선을 넘어 10월 19일에는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을 탈환했다. 한반도 통일은 눈앞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 공세 작전이 시작되자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거나 그들의 포위망에 고립됐다.

11월 24일,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 주력이 아직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크리스마스 전까지 전쟁을 끝낸다는 목표로 ‘크리스마스 공세’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미 한반도에 투입돼 조직적 지휘체계를 갖춘 중공군은 약 30만 명에 달했다.

11월 25일, 중공군 2차 공세에 동부전선의 미 10군단과 국군 1군단은 퇴로가 차단당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맥아더 장군은 11월 28일 동부전선 부대에 ‘함흥과 흥남 해안교두보 지역으로 집결할 것’을 지시했다. 미 해병 1사단은 철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장진호에서 흥남까지 110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장진호 일대는 고도가 약 1000m가 넘는 산악지형으로, 11월임에도 날씨는 이미 한겨울이었다. 참호를 파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땅이 얼어,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 총탄에 노출된 채 싸워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전의를 고양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 해병 1사단은 전사한 전우의 시신까지 수습하며 12월 11일 흥남에 도착했다. 12월 8일, 맥아더 장군은 흥남 철수 명령을 하달했다. 국군과 미군이 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유를 찾아 나선 피난민 10만여 명이 순식간에 흥남부두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군 병력과 장비, 물자를 철수하기에 수송선은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피난민을 외면할 수 없었던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을 포함한 지휘관들과, 미 10군단 민사부 고문 현봉학 박사는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에게 피난민들을 배에 태워줄 것을 간절히 호소했다. 이들의 강한 의지에 미군은 피난민과 함께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12월 15일,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병력과 장비를 실은 상륙함이 출항하며 철수 작전이 시작됐다. 이후 미군 수송선 190여 척이 동원돼 피난민 수송이 이어졌다. 중공군은 맹렬한 공격으로 압박을 가해 왔지만, 국군과 유엔군은 함포사격을 포함한 모든 화력을 동원해 저지했다.

이 철수작전에는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도 투입됐다. 당시 빅토리호는 정원 60명 중 승조원을 제외하고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1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 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태워라’라고 지시했다.

선장의 명령에 따라 빅토리호에서 군수물자를 버리고 피난민을 태우는 데에만 약 10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마침내 12월 23일, 빅토리호는 승선 가능인원 2000명을 초과한 무려 1만4000여 명의 피난민이 탑승해 출항했다.

출항한 지 이틀 후인 12월 25일, 빅토리호는 거제도 장승포항에 닻을 내렸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목숨을 건 피난민들의 항해였다. 항해간 희생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5명의 새 생명이 탄생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이렇듯 흥남철수작전에서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빅토리호는 기네스북에 등재돼 세계 역사에 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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