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오래 전 일이다. 나에게는 키가 유달리 작아서 꼬마 할머니라고 불렀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농삿일로 바쁘신 어머니를 대신해 우리 칠 남매를 업어서 키우셨다. 그런데 그 할머니께서는 우리 어린 손주들을 보실 때마다 늘 따라다니면서 말을 하고 싶어하신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때마다 할머니 손을 뿌리치면서 도망가버리곤 했다. 그 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도 늙어가시면서 꼬마 할머니처럼 자식이나 손주, 또는 이웃과 늘 말을 하고 싶어하셨다. 가끔 장남이 마을 경로당에서 잘 놀고 계신 어머니를 도외지 아들집에 모셔다 놓기라도 하면 며칠도 못 넘기시고 친구와 이웃이 있는 마을로 돌아오시곤 하셨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께서는 그토록 자녀들이나 손주들을 데리고 말을 하고 싶어하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핏줄인 자식과 손주들이 귀여워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단지 그것만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말과 말하기에 대해 공부하고 가르쳐왔다. 그러면서 지난날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을 하고 싶어하신 까닭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살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말하는 활동이 우리의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주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 말하는 활동이 인간의 신경과 정신 그리고 코와 입, 귀를 비롯해 폐, 심장, 위, 장 등 모든 장기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걸 지나치고 살아간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뇌세포에 저장된 정보를 끊임없이 회상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냅스의 언어전달 물질이 활성화된다. 그러한 활발한 두뇌 작용은 치매와 같은 노화에 따라오는 여러가지 정신 질환을 예방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서는 구강 운동은 물론이고 성대와 위, 장, 폐, 심장 등 생리적 근육 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근육의 움직임은 뇌와 장기의 건강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복부나 심장, 폐 등 어느 곳이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되면 말하기가 어렵다는 걸로 쉽게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말을 하면 침샘에서 침이 나오게 되고 그 침은 소화기능을 도와준다. 한자 活은 혀에 침이 고이는 걸 말한다. 활기는 그때 생겨난다는 뜻이다.
누가 ‘어르신에게’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이’ 스스로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노인의 건강을 위해 여러 기관에서 하고 있는 그림그리기, 노래하기, 율동하기와 여러 도구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그런 방법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보다 입으로 말을 하게 하는 말하기 활동이 그 어떤 방법보다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그래서 언어 전문가들이나 의학자들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건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가 있어야 할 유치원은 어르신 유치원으로 바뀌고 곳곳이 요양병원이고 요양원 천지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00만 명이 넘어섰고 더구나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9%인 2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가든, 지자체든, 교육 기관에서든 어르신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획기적으로 마련해 주는 사업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말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전문가가와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남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말을 끌어내고 이어가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작은 책으로 엮어 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얼마 전에 어르신들이 자서전 ‘나의 소풍 이야기’를 펴내고 축해해 주었다는 전남 담양군의 소식은 매우 신선하다.
고독은 불행이다.
나도 늙어 말을 할 데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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