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66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660)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1 1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14)지리산 중산리에서 열린 천상병문학제를 돌아보다(5)
소강석 시인은 희성인 진주소씨(蘇氏)다. 진주 도동에 소씨 시조 소알천의 유택이 있고 재각은 진주시 상대동(801-1) 연암도서관 아래에 있다. 이곳을 지나갈 때면 건물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한 번씩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 앞을 차도 따라 들어가면 진주시가 경영하는 ‘청락원’(노인 복지시설)이 있다.

소시인은 진주소씨라 하면서 진주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아울러 지리산 중산리에서 천상병문학상을 받고는 남원시 운봉읍이 출생지여서 그랬겠지만 지리산권문학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필자의 이모 두 분이 산내면과 운봉읍으로 각각 시집을 가서 함양장에 오는 산내 운봉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도 귀가 솔깃하였다. 그런 데다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어사출또 직전에 읊은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했을 때 그 시의 뜻을 일찍 알아차린 운봉고을원이 제일 먼저 자리를 떴는데 변학도가 “어 운봉 운봉”하고 부르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소목사 시인의 사계절 좋은 시를 아직 더 살펴보고자 한다. 재미 있는 것은 그가 왜 계절에 민감해져 있을까? 필자가 볼 때, 우선 서정시를 목표로 한 그에게는 계절에서라야 서정소재가 쉽게 건져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거기다 소시인이 윤동주의 시세계를 정리할 때 「명동촌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절을 통해 요약했던 경험이 그로 하여금 계절이 시적 접근의 거점으로 용이하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기도 하겠다.

「여름 2」는 읽는 재미를 알게 한다.

“여름 새벽바다 모래사장에/ 글씨를 써놓았더니/ 파도가 올라왔다 읽고 내려간다/ 다 읽지 못했는지/ 또 올라왔다 내려간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지/ 또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며/ 읽고 또 읽는다/ 파도가 내가 쓴 글씨를 지워 놓고/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다/ 온 우주가/ 새벽바다에 밀려왔다 떠내려갔다 하며/그리움을 노래한다”

이 시의 배경은 여름의 새벽바다 모래사장이다. 파도가 왔다가 가고 또 갔다가 오고, 또 내려가고 그 되풀이가 재미 있다. 그것도 거기 글씨를 써놓으면 바다가 지우고 가고 또 와서 글씨를 찾는다는 구도도 재미있다. 나중에는 우주가 이 리듬에 좇아 그리움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자연이 움직이는 추를 하나 매달아 놓고 즐기고 있다. 눈동자를 연신 굴리는 재미, 그것은 춘향이 그네뛰기를 쫓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가을 1」은 잘 구워낸 도자기 같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쉬운 말, 물 흐르듯 흐르는 말, 비유가 제자리 들어맞는 말 등으로 짜여져 있다. 그럴 때 많는 사람들의 머리로 가슴으로 시구절이 스며들어갈 것이다. 그럴 때 그런 시를 명시라 할 것이다.

시인은 머리말에서 “어렵고 난해한 시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성시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순수한 고백의 언어를 남겨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밝힌 대로 이 작품은 윤동주의 순정(純情)의 언어, 천상병의 평이(平易)의 언어를 포괄하고 있다.

다음은 소시인의 그리움의 완성편이다. 「겨울 4」이다.

“겨울밤/검은 바람의 책장을 넘기면/ 너의 이름이 있다/ 길을 걷다가/ 눈 쌓인 가로수 앞에 서면/ 너의 이름이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반달에도/ 가로등 흐린 불빛 아래 서성여도/ 너의 이름이 쓰여 있다//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마다/ 너의 이름이 있다”

소강석 시인은 현대시 시장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추억의 멜로디 같은, 서정의 꽈리 소리 같은 고전적 시편들을 내놓고 있다. 지금 현대시는 사람들을 떠나 세상의 언어를 떠나 사람들의 울타리를 떠나 위기의 골짜기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 대표적인 비평가인 윤재근 교수는 “조선시대 한시가 정리된 것처럼 오늘 거의 모든 현대시는 말끔히 정리되어 사라질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소름끼치는 말이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소강석 시인의 길은 마냥 고전만의 길이 아니라 시 본원캐기의 현대요 미래지향적인 길이 될 터이다. 거기에 사랑이 흐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