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노인과 바다 vs 청년과 바다
[경일칼럼]노인과 바다 vs 청년과 바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5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송헌 변호사
이송헌 변호사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가 ‘청년과 바다’였다면 그 작품은 별 볼 일 없었을지도 모른다. 망망대해에서 홀로 고생하던 ‘늙은’ 사람이 초대형 청새치를 잡았고, 거기에 또 역경이라 할 수 있는 상어와의 싸움이 있어 더욱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기에 성공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노인과 바다의 저자 헤밍웨이는 1952년 위 작품을 발표했고, 1953년 퓰리처상을,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쿠바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로부터 들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그 ‘실제 사건’을 알려 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는 헤밍웨이에게 이야기 값으로 밥 한 끼에 술 한 잔 사주면 된다고 했으나, 헤밍웨이는 작품 성공 후 그에게 2만 달러라는 거액을 주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61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과 달리 어부 푸엔테스는 2002년 104세에 사망했다. 이제 100세가 매우 드문 시대는 아니다.

선진국들에서는 최근 ‘정년’을 늘리고 노인의 취업을 증가시키고 있다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의 업무 능력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된 경험 탓에 실수도 적다. 노인들이 청년들처럼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업무 성과를 유지하거나 조금씩 발전시키는 데는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직업 정년을 60세로 정해 두고 있다. 판사의 경우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70세, 그 외 법관은 65세가 정년이다. 그래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70세가 되면 그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나이 때문에 그 직을 물러나야만 한다.

지폐 5만원권의 신사임당은 46세에, 1만원권의 세종대왕은 52세에, 5000원권의 이이는 47세에, 1000원권의 이황은 69세에, 과거 500원권 지폐에 있던 이순신은 53세에 각 사망했다. 모두 조선시대의 인물이라서, 지금으로부터 불과 500년 내외의 사람들이다. 그 시절에는 50세만 되어도 오래 산 것이고, 60세면 매우 오래 산 것이라 여겼고, 70세를 고희(古稀)라 하여 그 명칭 자체에 희귀하다는 뜻을 담았다. 그런데 지금은 100세 시대라서, 만일 60세에 은퇴를 하면 40년을 살아야만 한다. 자신이 20세에 취업해 40년간 일하고 60세에 은퇴했다면 그 일 한 기간 40년 만큼이 싱싱하게 자신 앞에 펼쳐져 있게 된다. 그 40년의 세월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큰 문제가 남는다. 60세의 건강한 은퇴자가 향후 남은 인생 40년 내지 5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문제다.

우리는 60세 넘은 사람들을 나이 든 사람으로 취급해 경제 활동 면에서는 다소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노인이 아니라 그냥 ‘어른들’이다. 그 분들은 대단한 에너지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절, 좌파와 우파의 엄청난 대립 속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던 때를 지나 군사 정권 시절의 개발 독재와 어진 시련의 시기를 넘어 문민정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아오신 분들이다. 지금은 외견상 힘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분들이 그 시절을 살아오면서 사용했던 에너지들을 생각하면 지금 그 분들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2022년도에 세계 13위의 국민총생산 능력에 이르도록 만들어준 것이면 무조건 대단한 것이다. 대기업들이, 정치인들이 잘해서라기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잘해서 그런거라 본다.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지금 청년들을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시절 또는 1960년대로 보내면 그들이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린이들이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고,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아야 하듯이,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랑과 보호를 넘어 존경받아야 한다.

어른들의 몸과 정신에는 일제 시대부터 지금 2023년의 첨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살아오신 역사가 모두 스며들어 녹아 있다. 어른들은 이 시대의 창조자이면서 증인이고, 우리에게 생명을 이어주신 소중한 분들이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어려운 시기에도 그 분들은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고 보호하며 사랑해 주셨다. 어른들의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와 어깨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느라 에너지를 다 써 버려서 그런 거다. 어른들의 젊은 에너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다. 창조자이신 그 분들을 이유 없이 존경해야 한다. 살아오셨으므로 위대하다. 이제 우리가 그분들에게 조금 더 보람차게 신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드려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와 여성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을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며 보호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시대가 되기를 바래본다. 노인들은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