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한국 경제, 이대로 늙어 갈 것인가
[경일시론]한국 경제, 이대로 늙어 갈 것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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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는 늙어가면서 시간의 냉혹함을 깨닫는다. 충격을 받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 어쩔 수 없이 남은 인생이나 멋지게 살아야지 하면서 다시 한번 다짐과 체념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나치에 저항하다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작가 장 아메리는 늙어감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속절없이 늙어가는 이의 쇠락에 대해 우아한 체념이니 황혼의 지혜니 하는 말 따위로 위로하는 건 기만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와 사회가 빠르게 노화해 간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반세기 전 우리나라 인구의 중위 연령은 18세였다. 1970년대 후반에 20대, 1990년대 후반에 30대가 됐다. 경제 침체의 시발점이 된 외환위기는 연부역강하던 한국 경제가 무리하게 힘을 쓴 탓이었다. 지금은 43세를 넘는 인구와 그 아래 인구수가 같다. 중년의 위기를 겪는가 했던 한국 경제는 어느새 심각한 노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은 0.7명대로 떨어졌다. 서울은 0.5명대로 추락했다. 당연히 사상 최저다. 이 숫자가 2.1명이 안되면 인구는 줄어든다. 반세기 전 합계출산율은 4.5명이었다. 전체 인구가 3000만명이던 1970년에 태어난 아기는 100만명이었다. 총인구가 5200만명에 가까운 올해 출생아는 30만명도 채 안될 것 같다. ‘한국인은 멸종위기종’이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여겨도 좋을까.

인구는 경제성장을 예측하는데 가장 믿을 만한 지표다. 경제는 노동이나 자본 투입을 늘리거나 생산성을 높일 때 성장한다. 지난날 우리가 고도 성장을 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노동 공급과 상품 수요가 급속하게 신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연령대 인구는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동시간은 정책적으로 줄이고 있다. 2%대의 성장도 그만큼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저성장, 저고용, 고물가, 고환율, 저투자 등은 갑자기 늙어버린 한국 경제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급속한 노화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한국 경제를 더욱 움츠러들게 할 것이다. 가난한 노후를 걱정하는 가계는 소비를 줄인다. 성장에 대한 기대를 접은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계층 이동 가능성이 줄어든 사회의 갈등은 증폭된다. 고도 성장기에 축적된 자산이 후 세대에게로 상속됨으로써 흙수저와 금수저 간 벽은 더 높아질 것이다.

가장 암담한 것은 정치권의 해결능력과 리드십 부재다. 위기의식 조차 있는지 의심스럽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를 찾는 국회의원 후보를 생각해보자. 그는 1년 내내 아기 울음소리 한번 들을 수 없는 마을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표심잡기에 급급한 그가 재앙 같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들춰내며 성장 정체와 사회 갈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줄 리 없다. 고용 절벽과 집값 폭등으로 절망하는 젊은이에게 정치인들은 무슨 해법을 내놓았는가. 그들은 기껏해야 얼마간의 현금을 찔러주며 아픈 청춘들을 위로하려 한다. 정부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 많은 저출산 대책, 그 숱한 성장 전략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노화현상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모든 대책과 전략이 잠시 노화를 감춰주는 보톡스나 일시적으로 활력을 되찾게 하는 캠퍼 주사에 불과했던 건 아닌가.

한국 경제와 사회가 젊음을 되찾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노인에서 청춘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차근 차근 근력을 보강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 새로운 활력을 찾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늙어가는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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