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엄동의 차나무꽃과 한동훈의 결기
[경일시론]엄동의 차나무꽃과 한동훈의 결기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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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논설위원


엄혹한 한파가 며칠째 이어지던 지난 동짓날. 동네 야산공원에서 때아닌 차나무꽃을 보았습니다. 산책길 양켠으로 줄지은 차나무 잎새 사이사이에 색바랜 흰꽃 몇 송이가 띄엄띄엄 맹추위에 맞서고 있었던 거지요. 10월께 피어 지난달 절정을 이뤘던 차나무꽃입니다. 동지 무렵까지 지지 않는 모진 송이도 더러 있는 줄이야 몇 년 전에도 보아 알고 있었지만 또 한 번 서늘한 결기 같은 걸 본 셈입니다.

차나무에는 달마대사 설화가 정령처럼 맺혀 있습니다. 숭산·소림사 골짜기에서 9년간 벽만 보고 앉아 도를 닦았다는 선종 창시자가 달마입니다. 그 9년, 눈을 감기는 수마(睡魔)의 침노가 오죽했겠습니까. 하여 계도(戒刀)로 눈꺼풀을 잘라 휘익 던져버렸답니다. 이듬해 봄 그 떨어진 자리에 움이 돋아 나니 차나무였다지요. 그럴싸 그런 건지 차나무 잎이 사람 눈매를 닮은 듯도 싶습니다. 무엇보다 달마도에서 그의 눈이 퉁방울처럼 툭 튀어나온 까닭도 알 듯합니다.

달마는 수마뿐 아니라 또 다른 방해도 받았습니다. 그의 토굴 앞에 하늘을 이고 꿇어앉아 제자가 되겠다며 귀찮게 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눈 내리는 어느 밤에 달마가 말했답니다. “옛사람이 불도를 구할 때는 모질었느니. 굶주린 범에게 몸을 내주고 장님에겐 눈을 뽑아 주었느니라. 너는 말로만 법을 구하려느냐! 붉은 눈이 내린다면 내 네게 법을 전하리.”

방해자가 서슴없이 자신의 왼팔을 잘랐습니다. 선혈이 동굴 앞 백설을 빨갛게 물들였지요. 그가 곧 달마를 이은 선종 2조 혜가(慧可)입니다. 팔을 잘라 가르침을 구한다는 말, 구법단비(求法斷臂)라는 성어의 유래입니다. 스님들이 합장 대신 오른팔만 세워 인사하는 오늘날의 소림사 예법도 혜가의 구법단비를 기리는 전통이랍니다. 차나무가 어쩌다 동짓달에도 꽃을 달고 있는 걸 보면서 ‘저런 결기라면 무슨 일도 해 낼 거’라는 생각에 잠시 잠겼더랬습니다. 곧고 바르며 과단성 있는 성미를 일컫는 결기의 ‘결’은 요즘같이 매섭게 추운 겨울이란 뜻입니다.

지난주는 추위와 함께 여당 비상대책위원장 소식에 둘러싸였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당을 지지하든 않든, 그 당 죽쑤는 꼴이 안타까웠든 그걸 내심 즐겼든 모두가 한동훈 전 법무장관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한 주였습니다. 그 뉴스의 주인공이 결국 어제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투표로 비대위원장으로 확정돼 취임했습니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번 주말 비대위원 구성을 완료할 거랍니다. 그의 목표는 내년 4월 총선 승리입니다.

어제 오후 3시 비대위원장 취임 연설에서 한동훈의 올곧고 서늘한 ’결기’를 보았습니다. 필자만의 느낌일까. 그가 그동안 보여온 군더더기 없는 짧은 말, 교묘히 에두르지 않는 워딩으로 밝힌 그의 포부는 명료했습니다. ‘상식적인 국민을 대표해 민주당·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워 이기겠다.’ 그의 짤막한 문장은 담백합니다.그러나 여당 비대위원장 행로가 문장만큼 쉽고 단순 순탄만 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난치병 처방만큼이나 많겠지만 무엇보다 항심(恒心)입니다. 국민상식을 나침반 삼겠다는 다짐을 총선 때까지 천금같이 지킬 일입니다. 또 요며칠 좋게 나온 몇몇 여론조사에 우쭐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이 바라는 한 가지만 더 전하렵니다. 158가지에 이른다는 국회의원 특권을 확 줄이겠다는 걸 꼭 공약하기 바랍니다. 그 특권이야말로 정치판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겨울 맹추위만큼이나 엄혹한 게 여당의 지금 여건입니다. 어제 닻을 올린 한동훈호 국민의힘을 응원하는 사람과 시기심 가득하게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대체로 반반씩쯤 됩니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한동훈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보여준 그 서늘한 결기를 끝까지 지켜갈 것인지를 엄정히 바라보는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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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사람 2023-12-27 01:39:17
한비어천가를 불러라~~ 논설위원이 국민의힘 당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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