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크레센도
[경일춘추]크레센도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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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경 갤러리DOO대표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를 관람했다. 지난 해 6월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 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 콩쿠르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에 빛나는 18세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다.

크레센도는 음악을 연주할 때 ‘점점 세게’ 표현하라는 뜻의 악상 기호다. 영화 속에서 임윤찬의 등장은 절묘하게도 크레센도적인 등장으로 장치돼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화면에 거의 잡히지 않은 그의 모습이 빨리 클로즈 업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관객들은 화면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드디어 인터뷰 화면에 비치는 수줍은 청년의 얼굴과 눈빛 그리고 말투와 몸짓은 임윤찬의 영혼이 태생적인 겸손으로 장착돼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임윤찬이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열정적이다 못해 자못 도발적이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광기 어린 집중과 테크닉을 넘어서서 작품세계에 오롯이 몰입해 노닒의 경지에 이른 천재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임윤찬이 결선무대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냉전시대였던 1958년 미국의 천재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 연주했던 곡이다. 64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연주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임윤찬의 폭발적인 연주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속페달을 밟듯 크레센도로 질주할 때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 영화는 수많은 서사를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세계 음악계에 새로운 천재 피아니스트로 화려하게 등극한 임윤찬의 스토리텔링을 제외하고 가장 관심이 갔던 서사는 은메달의 러시아 출신 안나 게뉴시네와 동메달 수상자 우크라이나 출신 드미트리 초니의 경쟁과 화합이었다. 시상식에서 두 사람의 포옹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수상자로 두 사람의 이름이 각각 불리어졌을 때 나는 작은 소리로 박수를 쳤다. 모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참가를 반대하는 여론에 자칫 콩쿠르 참가 자체가 불발될 뻔했던 우여곡절을 딛고 은메달의 쾌거를 이뤄낸 그녀는 나이 제한 마지노선에 걸린 31세에다가 둘째까지 임신한 상태였으니 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었다.

새해에는 전쟁으로 얼룩진 지구촌의 수많은 대립과 장벽들이 허물어지고 교전의 땅에 평화의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국경과 이념과 문화를 뛰어넘어 사람들을 하나되게 해주는 음악의 위대한 힘을 깨닫게 해준 영화 크레센도의 의미처럼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아름다운 청년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는 앞으로 세계 속으로 울려퍼져 나갈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점점 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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