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겨울왕국
[경일춘추]겨울왕국
  • 경남일보
  • 승인 2023.12.2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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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시인·경남문인협회 사무국장
이미화 시인·경남문인협회 사무국장


또 한 해가 저문다. 가만히 앉아 아쉬움만 토로하기엔 생이 그리 길지 않다. 친구들과 겨울왕국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의 중심지인 삿포로는 12월 한 달만 해도 평균 423㎜ 정도로 눈이 내린다. 서울의 12월 평균 강설량이 25㎜ 정도 인 것을 감안하면 삿포로에 내리는 눈의 양을 가늠할 수가 있다. 겨울엔 온통 눈 밖에 볼 것이 없다는 곳, 삿포로 여행을 떠났다.

몇 년 전, 천만관객을 달성한 ‘겨울왕국’에 심취했었다. 최고의 친구이자 자매였던 엘사와 안나를 보면서 아이들보다 더 얼음나라 공주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1시간 48분 동안 갱년기 우울증을 겪고 있던 나를 꼼짝없이 신비의 세계로 끌고 들어갔다. 꿈과 희망 그리고 모험의 설렘은 깊은 수렁과도 같았던 우울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태풍급이었다. 푸른빛의 얼음 위에서 마법을 풀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여정은 긴장과 웃음 그리고 따뜻한 우정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미 우정으로 똘똘 뭉쳤다. 신치토세 국제공항에 내려 숲의 요정 마을이 있는 닝구르테라스를 향해 달렸다. 먼저 온 눈들 위에 다시 새로운 눈들이 차창을 두드렸다. 4시에 일몰이 되는 숲속의 요정마을엔 하얀 눈 쌓인 통나무집을 밝힌 귤빛 전등이 유혹을 해왔다. 언제라도 키 작은 요정이 튀어나와 내 손을 잡고 동화 속으로 데려갈 것만 같았다. 이곳에선 가난이나 부자란 단어는 무용지물이지 않을까. 그냥 행복이란 단어들만 하얀 세상 속에서 팔랑거렸다. 나도 내가 가진 속물을 하얀 눈 속에 헹구고 요정의 친구로 동화되어 갔다. 하얀 색은 금방 어둠을 타는지 네 시가 가까워지자 어둑해졌다.

홋카이도 중심지인 삿포로 가는 길은 모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공(時空)이었다. 스물네 명을 태운 대형버스는 스노우타이어 덕분인지 우리의 모험지를 편하게 이동해 주었다. 차창 밖으로 찾아오는 풍경들은 모두가 옛날 크리스마스 때 주고받았던 성탄절 카드였다.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아치형 지붕, 눈발 속에 겨우 선만 내보이는 창문, 가지 가득 눈꽃을 피우고 선 자작나무 행렬, 그때 내 마음은 푸른 공주 엘사가 되지 않았을까. 비스듬히 눈을 감고 있는 내 모습을 누가 봤더라면 말이다.

나는 돌아왔지만 나의 모험은 현재진행 중이다. 삿포로 가는 길에서 만난 도야호수, 검은 곰, 지옥계곡, 켄과 메리나무, 함께 동행해준 친구들의 우정까지 나의 모험 기록지가 빽빽하다. 올해의 모험 종착지는 겨울왕국이다.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하루하루 아껴 쓰며 소중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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