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촌 다녀오겠습니다 (1)진주 정수예술촌
예술촌 다녀오겠습니다 (1)진주 정수예술촌
  • 백지영
  • 승인 2024.01.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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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예술인이 뭉쳤다 ‘그들 만의 예술창작소’

예술인들의 마을을 뜻하는 예술촌. 경남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예술 공동체지만, 일반인은 물론 예술인조차 예술촌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속속들이 아는 이는 드물다.

경남지역 예술촌들은 한때 예술촌협회를 통해 서로 교류하고 단체 전시에 나서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일부 예술촌만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 새로운 도약에 나서는 곳부터, 지자체 등의 지원에 힘입어 비교적 대중과 가까운 움직임을 펼치는 곳까지 예술촌마다 그 행보가 각양각색이다.

본보는 갑진년 새해를 맞아 베일 속 도내 각 예술촌을 방문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고 오늘, 그리고 내일을 그려보는 릴레이 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정수예술촌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수예술촌 작가들. 왼쪽부터 이경민 촌장, 조유주 작가, 박윤숙 작가, 백인곤 사무국장.
정수예술촌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수예술촌 작가들. 왼쪽부터 이경민 촌장, 조유주 작가, 박윤숙 작가, 백인곤 사무국장.

진주 도심에서 경남수목원이 있는 동쪽을 향해 차량으로 30여 분. 근처에 볼일이 있지 않고서야 좀처럼 지나갈 일이 없을 법한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알록달록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진주 이반성면 옛 정수초등학교 건물에 자리 잡은 예술 공동체, 정수예술촌 간판이다. 1993년 폐교 후 온기를 잃었던 학교 건물은 2000년부터 지역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예술촌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정수예인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이제는 정수예술촌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 공간은 지역 예술인들이 뭉쳐 그 예술세계를 꽃피우는 무대로 탈바꿈했다.

한때 학생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던 복도를 따라 늘어선 교실 공간 등은 작가들의 작업실로 변모했고, 부속 건물은 ‘정수갤러리’ 등 새로운 간판을 달았다.

지자체 혹은 각종 기관과 손잡은 일부 예술촌과는 달리 어떠한 지원도 없이 작가들끼리 폐교 임대료를 모아 내고, 수도 공사나 기름칠 등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자생적으로 운영되는 예술 창작 공간이다.

 

백인곤 작가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수예술촌 작가들. 왼쪽부터 이경민 촌장, 백인곤 사무국장, 박윤숙 작가, 조유주 작가.
백인곤 작가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수예술촌 작가들. 왼쪽부터 이경민 촌장, 백인곤 사무국장, 박윤숙 작가, 조유주 작가.

◇작업실 갈증에 모여든 작가들

현재 정수예술촌은 입주 작가 14명과 비입주 작가 13명 등 모두 27명의 작가로 구성돼 있다. 한지·퀼트·섬유·가죽·나무 등 다양한 공예를 비롯해 도예, 서양화, 한국화, 조각, 판화, 천연염색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뭉쳤다.

독특한 점은 진주에 자리 잡고 있지만 생각보다 경남지역 타 시·군 작가들의 입주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예술촌을 이끄는 이경민(한지조형) 촌장은 함안, 백인곤(조각) 사무국장은 창원 진해 등 전체 구성원의 1/3 정도는 다른 시·군에 있는 자택에서 이곳을 오간다.

진주는 물론 도내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 폐교 건물로 모여든 이유는 단순하다. 작업 공간이 필요해서다. 자신의 자택을 작업 공간으로 삼지 않는 이상, 작가들에게는 작업실이 필요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이나 작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입지 조건이 우수한 도심에 작업실을 구하기 쉽지 않다.

가장 최근 예술촌에 입주한 막내, 조유주(한국화) 작가는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갈증으로 이곳에 터를 잡은 인물이다. 결혼 전까지는 진주 도심에 월 30~40만원 씩 임대료를 내며 작업실을 구해 썼지만, 결혼 후 왠지 부담스러운 마음에 작업실 대신 자택 방 한 칸을 작업실로 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들이 쌓여 집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자 다른 작가들과 도심에 공동 작업실을 구해보기도 하고 각종 레지던스 생활도 해봤지만 그 종착점은 정수예술촌이었다. 활동비·재료비 등을 지원받던 레지던스 시절과 달리, 임대료·전기세 등을 직접 부담해야 하지만 도심 작업실 마련과 비교하면 저렴한 데다 3개월 등 짧은 단위로 작업 공간을 옮겨야 하는 방랑자 신세를 벗어날 수 있어 만족스럽다.

진주 출신으로 현재 진해에 거주하는 백인곤 사무국장은 큰 제약 없이 조각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려 2011년 자택에서 1시간 거리의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가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진해에 작업 공간을 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돌을 깎는 작업 등 소음이나 먼지가 다량 발생하는 조각 특성상 도심에서는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적당히 눈치껏 작업을 펼치면 되는 데다 사람들도 좋은 이 공간의 매력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들처럼 교외 예술촌의 매력에 빠진 작가들로 예술촌 작업 공간은 늘 만실이다. 이 때문에 알음알음으로 들어왔던 예술촌 초기와는 달리 회원 가입 시 포트폴리오를 제출받고, 입주 희망 시 공실이 날 때까지 대기하다 경쟁을 거쳐 입주 작가로 비로소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정수예술촌 내 각 작가들의 작업실을 잇는 복도 공간.
정수예술촌 내 각 작가들의 작업실을 잇는 복도 공간.

◇침체기 넘어 새로운 도약 꿈꾸다

예술촌은 한 때 어린이를 비롯한 각종 체험객 웃음소리로 북적였다. 각종 공예 체험을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부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폐교를 둘러보며 추억 속 어린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예술촌을 찾았다.

2004년 정수예술촌 활동을 시작한 뒤 그 매력에 빠져 인근 이반성면에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입촌 20년차 박윤숙(퀼트) 작가는 가을이면 개최해 온 열림전 기간 쌓아온 추억을 더듬었다. 박 작가는 “10월이면 은행 단풍과 함께 정겨운 풍경을 보러 많은 분들이 찾곤 했다”며 “열림전 기간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호박죽 등 먹을거리를 준비해 인근 주민 등과 흥겨운 잔치를 벌였다”고 회상했다.

전국 혹은 경남 단위로 다양한 예술촌이 의기투합해 연합 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합동 전시에 나서기도 하고, 단체로 각종 아트페어에 참가하기도 했다. 예술촌 내 창작공간과 별개로 숙식까지 가능한 레지던스를 마련해 새로운 작가들과 부대꼈던 추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예술촌은 한동안 조용한 세월을 보냈다. 외부 큐레이터 수급 문제로 각종 공모 사업 도전이 어려워졌고, 이반성면 권역 단위 종합 정비 계획에 포함돼 여러 보수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안전 문제로 어린이 체험객들을 받기 힘들어졌다. 공사가 끝난 후에는 코로나19로 숨죽인 나날을 보냈다.

예술촌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적극적인 대외 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23년부터다. 작품 활동과 함께 문화 기획을 병행해 온 신입 조유주 작가가 다시 다양한 활동을 해보자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활발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침체기에 빠진 예술촌이 다시 도약하기를 바라며 기획자를 자처했다.

신입의 제안에 기존 구성원들은 반색하며 지원을 자처했다.

 

이경민 정수예술촌장.
이경민 정수예술촌장.

이경민 촌장은 “다시 예술촌에 활기가 넘쳐 좋다. 젊은 작가가 따온 공모 사업에 예술촌 작가들이 함께 투입됐는데 기존 내공을 바탕으로 다양한 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주민들과 교류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2023년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전시는 물론 예술촌과 맞닿은 삼거마을에 예술길을 조성하고 발달장애 아동 대상 체험 활동을 진행하는가 하면, 가족 단위 교육생을 대상으로 ‘토요 예술촌 아트캠핑’을 운영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예술촌의 과제는 지난해 시도들이 단발성에서 그치지 않도록 계속해 이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문화 관련 각종 기관의 공모를 분석하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이반성면 권역 단위 종합 정비사업을 통해 예술촌이 위치한 삼거마을 등 이반성면 8개 마을을 묶어 조성한 정수문화마을과의 균형도 숙제다. 예술촌이 한창 운영되던 시기, 진주시와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추진해 만든 정수문화마을이 어느 순간 예술촌의 상위 개념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 수직 관계가 아닌 동등한 수평적 관계로서 서로 협력해 나갈 수 있기를 예술촌 촌민들은 희망하고 있다.

글·사진=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정수예술촌 내 복도 공간으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정수예술촌 내 복도 공간으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정수예술촌 내 조유주 작가의 작업실.
정수예술촌 내 조유주 작가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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