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
청룡의 기운을 담은 새해가 밝았다. 늘 그렇듯 새해엔 또 다른 시작으로 희망을 주고받는다. 계속 이어지는 삶에 시간 단위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주기’는 힘든 일도, 기쁜 일도, 단조로운 일도 마침표와 시작의 기회가 된다. 끝내고 싶고, 위로가 필요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이에게 시간, 하루, 월, 년 주기는 억지스럽게 설득하지 않아도 분위기 쇄신의 기회가 되어준다. 작년 한 해도 살아내느라 수고한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토닥이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모두에게 맞는 한 해를 시작해보자.
2023년 11월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며 ‘여성혐오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본 사건의 가해자 진술에 의하면 이렇다.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숏컷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그리고 남성연대인 가해자에게 그 폭행의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폭행을 말리던 또 다른 남성을 폭행한 이유는 첫째, 같은 남성끼리 연대하지 않은 것, 둘째, 페미니스트를 벌주는 자신을 방해한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노골적 반감과 자신의 성인식에 동조하지 않는 남성에 대한 반감이 폭행의 이유였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 폭행 사건이 아닌 ‘여성혐오범죄’로 봐야 한다.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이 없으니 혐오 범죄 피해자의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학대 피해가 ‘아동’학대, ‘노인’학대, ‘장애인‘학대로 구분하는 이유가 그 대상의 특수성을 고려해 대상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듯이, 현재 한국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혐오범죄’ 또한 그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 혐오범죄, ‘여성’혐오범죄 특수성에 맞는 지원과 예방, 재발방지가 이루어져야 그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여성혐오가 얼마나 비난받을 만한 일인지 인지가 되어야만 타당한 처벌과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오늘도 미디어를 통해 경악스런 사건 하나를 또 접했을 뿐이며, 하루 이틀 일도 아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또 몇 명의 죽음과 몇 명의 희생을 딛고서야 그 대책을 마련하게 될까.
현실이 이렇다 보니 당신의 성별이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신이 잔혹한 폭행을 당하면, 심리적·물리적 피해와 고통을 혼자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당신을 예로 든 이유는 내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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