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책의 향기
[경일춘추]책의 향기
  • 경남일보
  • 승인 2024.01.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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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경 갤러리 DOO대표
정두경 갤러리 DOO대표


새해가 되면 크게 두 가지 정도의 목표를 세운다. 해마다 너무 많은 목표를 세우고 반도 달성하지 못한 채 한 해가 끝나기 일쑤여서 최근에는 두 가지의 목표를 정해 실천해 나가고 있다.

올해 실천할 과제 두 가지는 몸과 마음의 근육 키우기다. 마음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책읽기를 하기로 하고 독서 모임에도 가입했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늘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다 보니 요 몇 년 사이 독서는 나의 일상에서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책꽂이에서 언니들의 책을 슬금슬금 빼 읽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대학생 언니들이 읽는 소설과 수필을 읽었다. 집에 있던 조선시대 야사를 읽을 만큼 성숙한 책읽기를 했다. 다락방에서 언니들의 지나간 일기장과 누렇게 변해버린 오래된 신문기사 읽기는 나의 은밀한 취미생활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전국 규모로 시행되던 ‘자유교양경시대회’란 이름의 고전읽기반에 들어가 방과 후에 남아서 책읽기를 했다. 중학교에서는 오후 수업 등은 아예 빠지고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었다. 학교 도서관의 키큰 책꽂이와 책꽂이 사이에 길게 나 있는 좁은 통로는 우리들이 차지하고 싶은 최고의 장소였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와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어둑신해질 때까지 책읽기를 했다. 물론 우리가 경시대회를 위해 읽고, 내용을 달달 외고 있어야 할 책은 학년 별로 네 권씩 정해져 있었지만 호기심 많은 소녀들이 어디 그 책만 읽고 있었겠는가.

여름 방학 내내 도서관 책꽂이 뒤의 서늘한 복도에 몸을 숨긴 채 읽고 싶은 책을 몰래 빼내 읽는 일은 참으로 매혹적인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오래된 책냄새와 습기를 머금은 창고 냄새를 좋아한다. 어느 순간, 훅하고 예기치 않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도서관의 단발머리 사춘기 소녀시절을 떠올린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책꽂이 뒤의 좁은 복도를 은신처 삼아 깨알같은 글씨들을 읽은 댓가로 중학교 3학년부터 안경을 써야 했다.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인생에서 모든 불행으로부터 스스로 지킬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영국의 극작가 서머셋 몸의 말처럼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담대하고도 건강한 마음의 근육을 제대로 키우는 일이 아닐까.

올해부터 책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수많은 인물들의 정신과 영혼을 만나고 싶다. 아직도 나는 새 책의 인쇄 냄새보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한다. 눅눅한 곰팡내가 나는 책 냄새는 언제나 내 그리움의 촉수를 건드리는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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