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마무리 아쉬운 서부경남 광역자전거 도로망
[경일시론]마무리 아쉬운 서부경남 광역자전거 도로망
  • 경남일보
  • 승인 2024.01.1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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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새해 첫 주말 오랜 벗과 자전거 투어를 즐겼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진주역 광장을 출발해 우주항공청이 들어 설 ‘뜨는 도시’ 사천으로 향했다. 강주연못, 진주·사천 접경지를 지나 사천읍 방면으로 달렸다. 첫 기착지는 사천읍성 수양공원 침오정. 사천 앞바다 용왕이 병이 들어 토끼생간을 구하러 뭍에 온 자라가 휘영청 밝은 곳에서 며칠 밤 묵은 곳이란다. 베게 침(枕), 자라 오(鰲)를 쓴 ‘침오정’이다. 멋진 풍광을 잠시 즐기고, 야트막한 구릉지와 굽이치는 해안선이 유혹하는 사천 앞바다로 페달을 밟았다.

다소 복잡한 읍내 자전거 길을 지나자 해안선을 따라 잘 연결된 자전거 도로가 기다린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보고 사천만 갯벌은 특유의 운치로 자전거 투어의 품격을 한층 더했다. ‘석화’ 까는 아낙, 종포의 진또배기, 무지개빛 해안도로, 대포동 여인 옆모습 실루엣은 라이더의 발길을 한참이나 머물게 한다. 거북선이 최초로 출전한 사천만, 선진리성, 조명군총 같은 400년 전 역사의 흔적은 풍성한 이야깃거리로 다가온다. 사천대교를 건너면 별주부 전설이 전해지는 비토섬이 기다리고, 남양 실안 방면으로 달리면 삼천포항, 고대 동북아 최대 무역항 늑도로 이어진다. 자전거 투어 명소가 따로 없다.

자전거 삼매경에 빠져 잠시 망상에 젖어봤다.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한라산에 가보자고. 피식 헛웃음이 나왔지만, 삼천포에서 제주 가는 배를 탄다면 못할 것도 없다. 더 욕심내 지리산 천왕봉까지도 간다면 어떨까. ‘지리에서 한라까지’ 자전거 투어가 완성된다. 시 투 서밋(sea to summit) 챌린지. 해발 0에서 국내 1, 2위 고산 정상까지 오르는 도전이다. 밋밋한 여행은 도전정신을 자극하지 못하는 법. 넘치는 아드레날린에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한계를 인식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체력의 한계도 있겠지만, 진주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서부경남 광역 자전거도로망 구축사업의 허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날 자전거 투어는 최근 진주시와 사천시가 자전거도로를 연결했다기에 부푼 기대감으로 나섰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경계지역 일부만 연결했을 뿐 지역 내 자전거도로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차도나 인도, 농로를 타야 해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다. 이정표와 연결망 지도가 없다보니 곳곳에서 길을 잃거나 길 끊어짐을 겪어야 했다. 현장 보다 ‘한 박자 빠른 지자체 홍보’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아쉬웠다. 다 해놓고 홍보해도 늦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앞서 개통했다는 진주·산청 광역자전거도로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진주, 사천, 산청 할 것 없이 해당 지역 내의 주요 자전거도로망은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는 편이다. 자전거도로망 구축을 위한 지자체의 열정과 관심에 찬사를 보낸다. 사천의 경우 옛 진삼선 폐선로 부지를 활용한 자전거도로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겨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진주는 남강, 경전선 폐선로를 중심으로 도심 구석구석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진주를 중심으로 인근 산청, 사천, 함안을 연결하는 광역자전거도로망이 자전거 여행의 성지가 되려면 시·군 경계지역 연결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정교함이 필요하다. 혈세를 들이는 일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치적용 홍보에 앞서 깔끔한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 자전거도로에 관한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책은 차고 넘친다. 문제는 물 흐르듯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왕에 추진 중인 서부경남 광역자전거도로 구축사업이 해당 지자체간 공조로 촘촘하게 잘 이어졌으면 좋겠다. 진주서 자전거 타고 한라산을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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