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와 함께 보는 전시]'로즈 와일리' 전
[도슨트와 함께 보는 전시]'로즈 와일리' 전
  • 백지영
  • 승인 2024.01.15 2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성별 빼고 단지 한 명의 작가로만 봐 주세요"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보라색은 누군가의 탄생석부터 제비꽃 몽우리,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가수를 향한 애정까지 그 앞에 마주선 이의 해석에 따라 제각각 다른 상징물로 분한다.

미술 전시를 찾는 이들의 감상 방식도 다양하다. 사전에 작가나 작품 정보를 꼼꼼히 공부하고 전시장을 찾는 이들부터, 전시실에서 받아 든 리플렛·도록·오디오가이드에 의지해 작품을 감상하는 이, 아무런 편견 없이 작품을 보고 싶다며 작품 제목조차 읽지 않는 이들까지.

각 관람 방식마다 그 매력이 분명하지만, 도슨트(전시해설사)와 함께 감상하면 자칫 놓치고 넘어갈 뻔했던 작품의 특징부터 제작에 얽힌 일화까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전시의 큰 맥락을 짚어보기 제격이다.

전시실에 붙은 설명이나 리플렛에 적힌 정보를 넘어, 도슨트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도내에서 진행 중인 전시를 조금 더 촘촘하게 들여다본다.



창원 성산아트홀에서는 지난 5일부터 대규모 원화 전시, ‘로즈 와일리’展이 열리고 있다. ‘영국을 너머 전세계를 사로잡은 90세 할머니 화가’라는 수식어 곁으로 자리 잡은 그림은 당장 사춘기 소녀들의 수첩 표지 그림으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유쾌한 분위기를 풍긴다.

‘로즈 와일리’展은 창원 성산아트홀이 수년 만에 선보이는 대형 원화 기획전이다. 로즈 와일리 한 명의 작품으로 1층과 2층의 전시실 6곳을 모두 채웠다.

잔뜩 힘을 준 전시인 만큼 전시 관람을 돕는 도슨트(전시해설사)도 6명 배치했다.

‘로즈 와일리’展 도슨트 중 한 명인 공성빈 도슨트와 지난 9일 오후 함께 전시를 둘러봤다. 방문 전 미리 리플렛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다채로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한 관람을 이끌었다.

전시의 시작점인 1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 ‘City Road’는 60대가 돼서야 인지도가 생긴 로즈 와일리의 오랜 무명 생활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연예인들이 데뷔를 위해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듯, 무명 시절 로즈 와일리는 자신이 소속되고 싶었던 갤러리에 작품을 넣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다녔어요. 그 당시 자신의 모습이 양치기 소녀처럼 느껴졌는데 그 마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로즈 와일리가 60대였던 1999년 그린 이 ‘City Road’를 비롯해 2000년을 전후해 제작한 작품들은 이 전시에서 그의 ‘초기작’으로 꼽힌다. 뒤늦게 빛을 본 작가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외 대부분 작품은 그가 80대의 나이에 이르러 화폭에 담았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해당 전시실에 소개하는 작품들의 특징이나 로즈 와일리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여러 문구가 붙어있다. 다른 전시회와 비교해 유독 글씨 크게 느껴진다는 말에 공성빈 도슨트는 관람객 배려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특성상 연령대가 높은 관객들이 영감과 용기를 받기 위해 오실 가능성이 높다고 봤어요. 작품들이 직관적이다 보니 어린이 관객도 많이 예상됐고요. 실제 다른 전시에 비교하면 노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방문하는 등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요. ‘어? 다른 전시에서는 글을 못 읽고 그림만 보고 가는데, 여기서는 나도 읽을 수 있네요!’라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전시실에서 만나는 로즈 와일리 원화에는 다른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통상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 위로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달리, 로즈 와일리는 우선 천에 그림을 그린 후 캔버스 위로 붙였다.

유화 작품을 그릴 때 공식으로 통하는 배경색 먼저 칠하기도 그의 작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천 위로 별다른 밑 색을 칠하지 않고 바로 작품을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들어 수정할 곳이 나오면 해당 지점에만 배경색처럼 보이는 색을 덧칠한다. 때로는 고치고 싶은 부분 위로 다른 종이를 덧붙인 다음 아무렇지 않게 그림을 이어 그리기도 했다.

“작가님이 1934년생인데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보니 절약 정신이 몸소 배어있어요. 영국 왕실의 결혼식을 그린 ‘Elizabeth&Henry with Birds’를 보시면 사람 뒤로 보이는 흰색 물감 있는 부분이 원래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그렸던 부분인데요. 그냥 하얀색으로 덧칠해 버린 거죠. 그 옆, 아무 색칠을 하지 않은 바로 옆 캔버스 천이랑 확실히 차이가 나죠? 우리가 미술 공식처럼 생각해 온 부분을 깨트린 겁니다.”

1시간에 가까운 전시 해설을 따라가다보면 똑같은 표정으로 노래하는 북한 어린이를 그린 작품, 손흥민의 친필 사인을 받아 그린 작품 등 다양한 작품에 얽힌 일화를 들을 수 있다.

전시해설을 끝내며 공 도슨트는 로즈 와일리가 전하는 말을 소개한다. ‘단지 늙어서가 아니라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어요.’

여성이나 유색 인종 등 비주류로 꼽히던 이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시대, 갑자기 쏟아진 관심이 혹시나 자신의 작품을 나이로만 해석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작가의 고민이 담긴 말이다.

나이도 빼고, 성별도 빼고, 단지 한 명의 작가로 자신을 봐줬으면 한다는 그의 말이 왠지 모를 여운을 남겼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9일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로즈 와일리’展 전시 해설을 맡은 공성빈 전시 해설사가 태블릿 화면을 통해 전시작의 배경이 된 초상화를 소개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9일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로즈 와일리’展 전시 해설을 맡은 공성빈 전시 해설사가 관람객을 향해 작품 속에 숨겨진 3가지 동물이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백지영기자
창원 성산아트홀 ‘로즈 와일리’展 전시작. 백지영기자
창원 성산아트홀 ‘로즈 와일리’展 전시작. 백지영기자
창원 성산아트홀 ‘로즈 와일리’展 전시작. 백지영기자
창원 성산아트홀 ‘로즈 와일리’展 전시작. 백지영기자
창원 성산아트홀 ‘로즈 와일리’展 전시작. 백지영기자
로즈 와일리 작품 옆 면. 일반적인 유화 공식과 달리먼저 천에 그림을 그린 후 캔버스에 붙여넣은 점, 천에 바탕색을 칠하지 않은 채 작품을 그리다가 수정이 필요할 때 배경색처럼 칠해 넣는 점 등 로즈 와일리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백지영기자
창원 성산아트홀 ‘로즈 와일리’展 전시작. 백지영기자
창원 성산아트홀 ‘로즈 와일리’展 전시작. 백지영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